누가복음 6장 37-38절
2. 정죄하지 말라 본문 37절 중반부에 이런 말씀이 있다.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이 말씀은 법정에서 정죄하는 것까지 금하라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신이 재판관처럼 사람을 심판하지 말라는 것이다. 선악의 분별은 필요하지만 선악의 심판을 내리는 듯한 태도는 지극히 삼가라. 선악의 심판을 내리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다. 비판이 습관화되면 점차 교만해져서 죄인을 심판하듯이 남을 정죄하는 잘못까지 저지를 수 있다. 비판은 잘못을 바로잡도록 돕는 것이지 정죄하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인 정죄는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 정죄는 자신이 죄가 없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려는 태도다.
2. 정죄하지 말라
본문 37절 중반부에 이런 말씀이 있다.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이 말씀은 법정에서 정죄하는 것까지 금하라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신이 재판관처럼 사람을 심판하지 말라는 것이다. 선악의 분별은 필요하지만 선악의 심판을 내리는 듯한 태도는 지극히 삼가라. 선악의 심판을 내리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다.
비판이 습관화되면 점차 교만해져서 죄인을 심판하듯이 남을 정죄하는 잘못까지 저지를 수 있다. 비판은 잘못을 바로잡도록 돕는 것이지 정죄하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인 정죄는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 정죄는 자신이 죄가 없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려는 태도다. 왜 사람들이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려고 했는가? 자신들이 간음하는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과시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내가 죄가 없다는 착각에 사로잡히면 구세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구세주를 의지하지 않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결국 비판보다 무서운 것은 비판이 극단화된 정죄다. 비판이 습관화되지 않도록 격려를 습관화시키라. 비판하지 말고 정죄하지 말라는 말씀의 더 깊은 의미는 격려하라는 말씀이다. 비판도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지만 비판보다 더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격려다.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것이 비판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면 가장 좋은 비판은 역설적으로 격려하는 것이다.
어느 날 여리고에서 예수님이 돌무화과나무 위에 있는 삭개오를 부르셨다. 삭개오는 다른 유대인들처럼 예수님이 자신을 비판하며 회개를 촉구하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친근하게 말씀하셨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너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그 말씀에 담긴 사랑과 격려에 삭개오는 크게 감동해서 자기 재산의 절반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겠다고 했고 자기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네 배로 갚아 보상하겠다고 했다.
비판의 목적은 문제를 고치는 것이다. 예수님도 삭개오의 문제를 아셨지만 그 문제를 조목조목 따지면서 회개하라고 다그치지 않고 그냥 사람들이 멸시하는 그의 집에서 하루를 머무시겠다고 했다. 그 격려가 녹아든 말씀에 삭개오는 마음이 녹아내렸다. 비판보다 격려가 사람을 더 변화시킨다. 가장 좋은 비판은 약점을 꼼꼼하게 잘 잡아내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인 의미에서 넉넉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21.2.20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