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장 16-17절
성육신의 사랑을 준비하라 (마태복음 1장 16-17절)
< 믿음의 선택을 하라 >
인생은 희망과 절망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믿음이란 예수님을 선택하고 희망을 선택하는 것이다. 본능이 넓은 문과 편안한 길을 선택할 때 믿음은 좁은 문과 십자가의 길을 선택한다. 본능이 오늘의 현실과 안전을 선택할 때 믿음은 내일의 비전과 도전을 선택한다. 믿음의 선택은 하나님의 선택도 받고 역사의 선택도 받고 사람의 선택도 받게 한다.
예수님의 계보에서도 어떤 사람은 선택되고 어떤 사람은 생략되었다. 본문 17절을 보라.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마태는 구속사적인 의미와 숫자적인 상징을 염두에 두고 역사적으로 더 많은 인물이 있었지만 각각 14대의 이름만 선택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일꾼으로 역사에 남을 사람을 선택하신다. 누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는가? 믿음의 선택을 하는 사람이다.
왜 신약 성경 첫 장이 예수님의 계보로 시작되는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인간 역사의 한 부분으로 오셨음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그래서 계보가 누가 누구를 낳았다고 짤막히 기록되다가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해서는 이렇게 표현한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16절).”
양력은 절망적인 역사에 희망을 만든 예수님이 탄생하신 해를 전환점으로 삼는다. 기원전을 뜻하는 BC는 ‘Before Christ(그리스도 전)’의 약자다. 기원후를 뜻하는 AD는 ‘Anno Domini(우리 주님의 해)’의 약자다. 예수님은 역사의 전환점이다. 또한 언제 어디서든지 예수님이 오시면 어둠과 절망이 물러가고 빛과 희망이 생기기에 가장 복된 삶은 주님이 마음에 찾아오시는 삶이다.
< 성육신의 사랑을 준비하라 >
주님은 어떤 마음에 찾아오시는가? 사랑을 준비한 마음이다. 가장 견고한 사랑 관계는 서로의 신분과 위치가 비슷한 상황에서 동등하게 형성된 관계다. 사회적 신분과 위치에 큰 차이가 있다면 사랑과 결혼이 불안해진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높은 사람이 낮아져 낮은 사람과 하나되면 그 관계는 어떤 관계보다 견고해진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과 그런 견고한 관계를 이루시려고 스스로 낮아져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다. 결국 참된 사랑의 제일 자격 요건은 성육신의 자세다.
봉사할 때는 낮아져서 봉사하라. 남을 도울 때도 낮아져서 도우라. 남에게 줄 때도 낮아져서 주라.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은 위치가 다르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받는 사람이 자존심 상하지 않고 비굴한 모습이 되지 않도록 지혜롭고 은밀하게 주는 삶을 실천하라. 결국 인생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삶은 나를 비우는 성육신의 삶이다. 더러운 곳을 더럽다고만 하지 말고 그곳에 뛰어들어 그곳을 깨끗하게 만들려고 하라.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해서 성육신하셨다. 그러므로 나의 삶의 현장과 현실에서 주님의 오심을 예비하려면 성육신의 사랑을 준비해야 한다. 디모데후서 3장을 보면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자신과 돈과 쾌락을 사랑하는 사랑의 변질이 생긴다고 했다. 오늘날 가장 큰 문제는 사랑을 빙자한 이기적인 사랑이다. 결국 인간사에 생기는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성육신의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배우자를 원망하며 자신이 20년 동안 종처럼 살았다고 불평한다. 아무리 큰 수고를 해도 사랑이 없으면 조만간 한숨과 원망을 낳는다. 왜 삶에 두려움과 불안과 절망과 공허가 있는가? 사랑의 결핍 때문이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세상이 험하다고 탓하지 말고 진짜 문제는 내게 사랑이 없는 문제임을 자각하라. 큰일을 하고 싶으면 성육신의 사랑을 준비하라. 더 나아가 사랑하는 것 자체가 큰일이다. 사랑을 준비한 마음에 주님이 찾아오시고 문제 해결과 비전 성취의 복도 주어진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