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0장 16-21절
16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18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19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20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 21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말씀을 바르게 들으라 (로마서 10장 16-21절)
< 말씀을 바르게 들으라 >
하나님의 말씀은 잘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듣는 것도 중요하다. 오늘날 교회가 힘을 잃은 가장 큰 이유는 말씀을 바르게 잘 전하지 못하는 사람의 책임도 크지만 말씀을 바르게 잘 듣지 못하는 사람의 책임도 있다. 뉴스나 음악을 듣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말씀을 듣지 않고 그런 것들만 듣는 것은 잘못이다. 시간 분량으로는 뉴스나 음악을 말씀보다 많이 듣더라도 영혼은 다른 어떤 것보다 말씀에 이끌리게 해야 한다.
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살라. 하나님의 말씀은 ‘자연, 양심, 역사’라는 일반계시를 통해서도 들리지만 ‘성경과 성경을 바탕으로 한 말씀’이라는 특별계시를 통해서는 더욱 뚜렷하게 들린다. 사방에 말씀이 넘쳐 있어도 듣는 귀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듣는 귀를 개발하려고 가끔 말하기나 보기나 행동하기를 그치라. 그때 세미하게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행동하면 인생길을 잘 잃지 않는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듣는 귀가 없어 말씀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16절). 믿음이 언제 생기는가? 복음을 들을 때다(17절).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믿음을 가지지 못한 것은 복음을 듣지 못했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3대 일반계시의 통로인 자연과 역사와 양심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인 특별계시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들려졌기 때문이다(18절).
결국 복음을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 먼저 받아들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기심이 생기게 해서 그들도 복음을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기 위해서였다(18절).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 거슬러 행동했다. 그런 유대인에게도 하나님은 사랑과 긍휼과 인내를 보여 주셨다(21절). 그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생각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복음을 듣지 않고 거절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 말씀을 듣는 자세 >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반면교사로 삼아 말씀을 바르게 들으려고 하라. 말씀을 들을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첫째, 열린 마음으로 들으라. 왜 완고한 유대인들은 들어도 믿음이 생기지 않았는가? 열린 마음으로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열린 마음으로 듣지 않았는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잘 듣게 되어 있다.
둘째, 실천을 다짐하며 들으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만 잘하면 안 된다. 말씀을 잘 듣는다는 것은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믿음이 좋다고 하는 것의 핵심 의미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을 잘한다는 것이다. 추구하는 것보다 순종하는 것이 앞서 있어야 한다.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무엇보다도 말씀에 순종하고 싶다.” 열린 마음과 귀를 가지고 말씀에 순종할 때 놀라운 현실 극복 능력이 나타난다.
셋째, 전도할 마음으로 들으라. 하나님은 왜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에게 먼저 복음을 영접하는 은혜를 주셨는가? 이스라엘을 버리시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해 변함없는 사랑과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21절). 결국 이방인들에게 먼저 복음의 문을 활짝 열어 주신 것은 교만하고 완악한 이스라엘이 시기심이 생기게 해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는 조치였다.
하나님은 영혼 구원을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십자가를 지게 하셨다. 그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고 영혼 구하는 일에 힘쓰라. 성도의 아름다움은 학력이나 재산이나 얼굴에 달려 있지 않고 전도하는 발과 선교하는 손에 달려 있다. 전도하고 선교하면 아픔도 당하고 누림의 삶을 일정 부분 희생해야 하지만 하나님은 그 희생에 대해 가장 큰 보상으로 갚아 주실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