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장 20-31절
20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각 남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21 르우벤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사만 육천오백 명이었더라 22 시므온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각 남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23 시므온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오만 구천삼백 명이었더라 24 갓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25 갓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사만 오천육백오십 명이었더라 26 유다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27 유다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칠만 사천육백 명이었더라 28 잇사갈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29 잇사갈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오만 사천사백 명이었더라 30 스불론의 아들들에게서 난 자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니 31 스불론 지파에서 계수된 자는 오만 칠천사백 명이었더라
복된 공동체를 만드는 길 (민수기 1장 20-31절)
< 형제 의식을 가지라 >
이스라엘(야곱)의 장자 르우벤 지파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각 남자를 그 명수대로 다 계수하자 모두 46,500명이었다(20-21절). 르우벤은 이스라엘의 12아들 중 장남이었지만 서모 빌하와의 간통으로 저주받아 장자권을 잃고 요셉이 실질적인 장자권을 얻었다. 그래도 르우벤 지파가 인구 조사에서 첫째로 언급된 것은 육체적인 장자였기 때문이다.
계수된 자가 시므온 지파에서는 59,300명이고(22-23절) 갓 지파에서는 45,650명이었다(24-25절). 레아의 장남인 르우벤 지파, 차남인 시므온 지파, 레아의 시녀 실바의 장남인 갓 지파는 가장 가까운 지파로서 성막 남쪽의 진에 함께 배치되었다. 그렇게 가까운 지파끼리 배치된 것은 지파 감정이나 배타 의식을 조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위하는 형제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서였다.
형제 의식을 가지고 형제를 이용 대상이 아닌 섬김 대상으로 삼으라. 어떤 사람은 형제에 대해 실망하면 이렇게 말한다. “형제도 소용없어.” 그러나 형제를 소용 대상으로 인식한 것 자체가 잘못이다. 소용(所用)이란 ‘적절하게 이용한다’는 뜻인데 형제는 적절하게 이용할 대상이 아니다.
형제는 물론 누구도 소용 대상으로 삼지 말라. “가족도 소용없어. 자식도 소용없어. 친구도 소용없어.”라는 자기중심적인 말은 자신의 의존성과 이기심을 나타내는 수치스런 말로 들려질 수 있다. 형제가 내게 소용이 있기를 바라기보다 내가 형제에게 소용이 있기를 바라라. 형제를 깎아내리면 나도 깎인다. 형제가 나를 배신해도 원망하지 말라. 내가 배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 남보다 앞서 헌신하라 >
계수된 자가 유다 지파에서는 74,600명(26-27절), 잇사갈 지파에서는 54,400명(28-29절), 스불론 지파에서는 57,400명이었다(30-31절). 레아의 4남인 유다 지파, 5남인 잇사갈 지파, 6남인 스불론 지파는 성막 동쪽에 함께 진을 쳤고 광야에서 행군할 때 유다 지파, 잇사갈 지파, 스불론 지파 순서로 행군했다. 유다 지파가 히브리 사회에서 가장 중시하는 방향인 성막 동쪽에 위치한 대표 지파가 된 것은 르우벤 지파 대신 유다 지파가 영적인 장자권을 얻었기 때문이다.
유다 지파는 전체 백성이 행군할 때 가장 선봉에 섰다. 유다 지파의 군사 수는 가장 많았고 늘 어려운 일에 앞서 헌신했기에 장자 역할을 했다. 그래서 후일에 유다 후손인 다윗이 이스라엘 왕의 정통성을 인정받았다. 또한 메시야도 유다 지파에서 나온다고 예언되었고 실제로 유다 지파의 후손인 예수님이 메시야로 이 땅에 오셨다. 유다 지파를 통해 배우는 복된 가문이 되는 핵심 원리는 앞서 헌신하라는 것이다.
삶의 틀을 먼저 헌신하는 것에 두라. 대화도 헌신하는 틀이 체질화되도록 말을 많이 하기 전에 많이 들으라. 많이 듣고 적게 말할수록 말이 권위 있게 된다. 사소한 말도 귀담아들어 좋은 대화 기회로 활용하라. 남의 말을 상습적으로 가로막고 재빨리 내 말을 하지 않도록 하라. 대화를 통해서도 헌신하는 삶의 틀이 나타나게 하라.
사람들은 자신에게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보다 자신의 아픈 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을 찾고 설교하는 사람보다 경청하는 사람을 원한다. 경청이 없이 설교만 하면 마음이 멀어진다. 먼저 잘 들어 주는 삶도 일종의 헌신이다. 그런 헌신을 생활화시키라. 공동체의 복된 일원이 되려면 권리를 요구하기 전에 헌신의 책임을 인식하라. 마음의 문을 열고 복의 문을 열려면 요구하기 전에 헌신하라. 앞서 헌신해야 앞선 리더가 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