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론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장자는 나답이요 다음은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이니 3 이는 아론의 아들들의 이름이며 그들은 기름 부음을 받고 거룩하게 구별되어 제사장 직분을 위임 받은 제사장들이라 4 나답과 아비후는 시내 광야에서 여호와 앞에 다른 불을 드리다가 여호와 앞에서 죽어 자식이 없었으며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그의 아버지 아론 앞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였더라
< 헛된 자만심을 주의하라 >
아론은 아내 엘리세바를 통해 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의 네 아들을 얻었다(2절). 그들은 제사장 성별식 때 아버지 아론과 함께 제사장 위임을 받았다(레 8:6-13). 그중 장자인 나답과 차자인 아비후는 잘못된 제사를 드려 하나님의 진노로 죽었다(레 10:1-2). 결국 셋째 아들인 엘르아살이 대제사장직을 계승받았고(민 20:25-28) 넷째 아들인 이다말은 엘르아살을 보필하며 겸손하게 봉사했다(출 38:21, 민 4:28,33).
거룩한 자부심이 헛된 자만심으로 표출되면 나답과 아비후처럼 된다. 사람은 겉으로 풍기는 모습만 봐도 어떤 사람인지 대략 파악된다. 교만의 냄새를 풍기지 말라. 하나님의 종이란 의식이 교만한 마음으로 표출되지 않도록 하라. 한국 교회가 왜 어려워지는가? 직분자가 거룩한 자부심보다 헛된 자만심을 가진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교회 직분자에게는 교만의 냄새가 없어야 한다.
미국에서 한때 눈길을 끈 <신사도 운동>에서 ‘신사도’의 뜻은 신사답게 살라는 영국의 신사도가 아니라 베드로나 바울 같은 사도의 업데이트 버전인 ‘새로운 사도’란 뜻이다. 명칭부터 교만의 냄새가 넘친 < 헛된 자만심을 주의하라 >
아론은 아내 엘리세바를 통해 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의 네 아들을 얻었다(2절). 그들은 제사장 성별식 때 아버지 아론과 함께 제사장 위임을 받았다(레 8:6-13). 그중 장자인 나답과 차자인 아비후는 잘못된 제사를 드려 하나님의 진노로 죽었다(레 10:1-2). 결국 셋째 아들인 엘르아살이 대제사장직을 계승받았고(민 20:25-28) 넷째 아들인 이다말은 엘르아살을 보필하며 겸손하게 봉사했다(출 38:21, 민 4:28,33).
거룩한 자부심이 헛된 자만심으로 표출되면 나답과 아비후처럼 된다. 사람은 겉으로 풍기는 모습만 봐도 어떤 사람인지 대략 파악된다. 교만의 냄새를 풍기지 말라. 하나님의 종이란 의식이 교만한 마음으로 표출되지 않도록 하라. 한국 교회가 왜 어려워지는가? 직분자가 거룩한 자부심보다 헛된 자만심을 가진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교회 직분자에게는 교만의 냄새가 없어야 한다.
미국에서 한때 눈길을 끈 <신사도 운동>에서 ‘신사도’의 뜻은 신사답게 살라는 영국의 신사도가 아니라 베드로나 바울 같은 사도의 업데이트 버전인 ‘새로운 사도’란 뜻이다. 명칭부터 교만의 냄새가 넘친다. 그런 교만을 느끼면 즉시 내적인 경계경보를 발동해 멀리하라. 그들은 성령충만의 증거라면서 사람을 넘어뜨리고 서로 넘어뜨리는 훈련을 시키지만 자기를 높게 보이려다가 오히려 괴상하게 보일 수 있다.
특이하게 보이려는 괴짜 행동이 또 다른 괴짜에게는 매력적인 요소가 될지라도 일반인에게는 교만한 영성 과시로 보일 수 있다. 하나님의 일꾼에게 교만은 치명적인 요소다. 거룩한 자부심과 지나친 자만심은 다르다. 낮아져도 비굴함을 거부하고 높아져도 교만함을 거부하라. 특별한 직분을 받으면 특별한 책임 의식을 가지되 특별한 권리를 요구하지 말라. 공동체나 역사는 특권을 포기하려는 사람을 통해 변화된다.
< 거룩하게 구별되어 살라 >
아론의 아들들은 기름 부음을 받고 거룩하게 구별되어 제사장 직분을 위임받았다(3절).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히브리어로 메시야라고 하고 헬라어로는 그리스도라고 한다. 아론의 아들들은 관유로 기름 부음을 받고 거룩하게 구별되어 제사장 직분을 위임 받았다. 관유는 성령을 상징한다. 구약 시대에 관유로 기름 부음 받는 것은 신약 시대에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는 것을 상징한다. 제사장은 성령충만하고 거룩하게 구별되어 살아야 한다.
미혹의 길이라고 느껴지거나 미혹의 냄새가 느껴지면 아예 발을 딛지 않는 것이 영혼을 지키는 길이다. 잘못된 것은 처음부터 거부하라. 구별된 삶을 살면 세상에서 결핍되고 뒤처질 것 같지만 하나님의 일꾼은 신기하게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이 채워 주시고 먹여 주신다. 어떤 성도는 목회자의 은퇴 후까지 생각해 준다. 목회자는 더 챙기지 않으려고 하고 성도는 더 챙겨 주려고 하면 얼마나 복된 공동체가 되겠는가?
왜 아론의 장자인 나답과 차자인 아비후가 죽었는가? 여호와 앞에 다른 불을 드리다가 여호와 앞에서 자식이 없이 죽었다(4절) 다른 불은 ‘정해지지 않은 불’을 뜻한다. 성막의 분향단 불은 번제단 불로만 피워야 했지만 나답과 아비후는 번제단 불이 아닌 다른 불로 분향단 불을 붙였기에 하나님의 분노로 불이 확 타올라 죽게 되었다.
하나님 앞에 불을 드릴 때 다른 불을 드리지 말고 바른 불을 드리라. 즉 바른 예배가 아닌 다른 예배를 드리지 말라. 필자는 신학원 학생들에게 수시로 강조한다. “목회에서 성공은 못해도 바르게 가십시오. 편법을 쓰지 마십시오.” 형식적이고 신비적이고 무속적인 예배는 하나님이 결코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신실하게 예배하라.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삼상 1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