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2장 21-30절
21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고관들과 함께 가니 22 그가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시므로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서니라 발람은 자기 나귀를 탔고 그의 두 종은 그와 함께 있더니 23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들어간지라 발람이 나귀를 길로 돌이키려고 채찍질하니 24 여호와의 사자는 포도원 사이 좁은 길에 섰고 좌우에는 담이 있더라 25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몸을 담에 대고 발람의 발을 그 담에 짓누르매 발람이 다시 채찍질하니 26 여호와의 사자가 더 나아가서 좌우로 피할 데 없는 좁은 곳에 선지라 27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발람 밑에 엎드리니 발람이 노하여 자기 지팡이로 나귀를 때리는지라 28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 29 발람이 나귀에게 말하되 네가 나를 거역하기 때문이니 내 손에 칼이 있었더면 곧 너를 죽였으리라 30 나귀가 발람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이 오늘까지 당신의 일생 동안 탄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 당신에게 이같이 하는 버릇이 있었더냐 그가 말하되 없었느니라
삶에서 버려야 할 것 (민수기 22장 21-30절)
1. 탐욕
모압 왕 발락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거짓 선지자 발람을 초청했다. 발람이 그 초청을 거절하자 발락이 더 높은 사신들을 보내 또 초청했다. 결국 그 초청에 응해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고관들과 함께 갔다(21절). 그때 나귀를 탄 그를 막으려고 여호와의 사자가 길에 섰다.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들어가자 발람이 나귀를 길로 돌이키려고 채찍질했다(23절).
미래를 본다는 당대의 유명한 점술가 발람은 여호와의 사자를 보지 못했지만 나귀는 여호와의 사자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발람이 탐욕에 눈이 어두워졌다는 암시다. 탐욕에 눈이 어두워지면 가야 할 장소로 가지 못하고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게 된다. 가야 할 장소로 가고 있어야 할 자리에 있으라. 하나님이 내게 있으라고 명하신 자리에 있고 가라고 하시는 길로 가야 인생이 아름답게 된다.
2. 남 탓
발람이 밭으로 들어간 나귀를 길로 돌이키려고 채찍질할 때 여호와의 사자는 포도원 사이 좁은 길에 섰고 좌우에는 담이 있었다. 나귀가 그 사자를 보고 몸을 담에 대고 발람의 발을 그 담에 짓누르자 발람이 또 나귀 탓을 하며 채찍질했다(25절). 그처럼 문제가 생길 때 남 탓만 하지 말고 내 탓은 없는지를 먼저 생각하라. ‘무엇 때문에, 누구 때문에’라는 말이 내일의 복을 달아나게 만든다.
남 탓이 줄어드는 것은 철이 들어가는 표식이다. 남 탓을 하려면 끝이 없다. 지적할 것이 있어도 서둘러서 지적하지 말라. 서두르지 않고 남 탓을 삼가며 내가 책임질 일은 책임지라. 기도한다면서 무책임한 삶을 살지 말고 기도하면서 책임적으로 살라. 물론 남 탓을 하지 말라는 말이 내 탓만 하라는 말은 아니다. 남 탓을 하지 말라는 말은 내 일을 책임지면서 책임적으로 살라는 말이다.
3. 교만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발람 밑에 엎드리자 발람이 노하여 지팡이로 때렸다(26-27절). 그때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심으로 나귀가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 이 장면은 성경에서 유일하게 짐승이 말하는 장면이다. 유명한 점술가 발람의 시각이 미물인 나귀의 시각보다 못한 모습을 보면 사람은 결코 교만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교만은 선한 변화를 가로막는다. 변화는 가르침과 비판으로만 되지 않는다. 겸손해야 진정으로 변화될 수 있다. 영적 교만에 사로잡히면 나밖에는 아무것도 잘 보이지 않고 남을 배려하는 이타적인 센서가 고장 난다. 그리고 손익 계산이 빨라서 내게 유익을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도 멀리한다. 이기주의는 교만과 한통속으로서 그 필연적인 결과는 후퇴와 패망이다. 교만을 버려야 발전도 있고 성령님이 함께하신다.
4. 분노
나귀가 항의하자 발람이 분노하며 말했다. “네가 나를 거역하기 때문이니 내 손에 칼이 있었더면 곧 너를 죽였으리라.” 나귀가 말했다. “나는 당신이 오늘까지 당신의 일생 동안 탄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 당신에게 이같이 하는 버릇이 있었더냐?” 이 장면을 보면 나귀가 분노하는 발람에게 선생처럼 가르치는 것 같다.
사람이나 환경을 조급하게 내 뜻대로만 이끌려고 하지 말라. 그런 마음을 가지면 분노 조절이 힘들어진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워 분노를 잘 조절하고 승화시키라. 조절되지 않은 분노는 남도 망치고 나도 망친다. 퉁명스러움과 짜증과 분노를 삼가도록 남을 한 번 더 생각하고 이해하려는 성육신의 마음을 가지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