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다림의 복 >
한 부부가 신혼 때 아내가 대학 동창을 만나고 조금 늦게 귀가했다. 아내는 남편을 생각해 빨리 온 편인데 남편은 기다리다 지쳐서 화가 났다. 그때 남편은 “마누라는 초장부터 잡아야 한다.”라는 옛날 속담을 떠올리며 초장에 잡으려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왜 이렇게 늦었어?” 결혼 후 처음 만난 동창 모임이었으니 할 말도 많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아내를 배려하지 못하고 결혼 초장부터 잡아야 된다는 속담에 속아 불신적인 언사를 표출한 것이었다.
다행히 아내가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서로 깊은 신뢰 관계가 형성될 때까지 남편의 성향을 참아 주었다. 그러자 점차 남편도 변화되어 나중에는 오히려 아내가 건전한 모임에 자주 가서 기분 전환을 하도록 힘써 배려했다. 그렇게 결혼 10년쯤 지난 어느 날 우연히 결혼 초창기에 동창회 갔다가 늦게 귀가한 얘기가 나왔다. 그때서야 아내가 남편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웃으며 털어놓았다. “여보! 그때 내가 얼마나 숨이 막혔는지 알아요?”
마누라를 초장부터 잡으라는 속담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아내는 초장부터 존중해야 한다.” 서로 초장부터 존중하라. 무엇이든지 초장부터 잘할 수는 없다. 작품 인생을 만들려면 인내와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삶은 기다림으로 빚어내는 다양한 그림이다. 삶이 힘든 것은 아직 기다린 것이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반대로 삶이 멋진 것은 아직 기다릴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학생은 방학을 기다리고 연인은 첫눈을 기다린다. 부모는 자식이 철들기를 기다리고 사업가는 사업이 꽃필 때를 기다린다. 구직자는 입사 소식을 기다리고 외로운 노인은 자녀의 전화를 기다린다. 소외된 사람은 따뜻한 친절을 기다리고 성도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린다. 무엇이든지 믿음으로 기다리면 마음이 환해진다. 찬란한 내일에 대한 기다림이 있기에 현실은 차가워도 마음은 따뜻해질 수 있고 힘과 용기를 낼 수 있다.
< 침묵의 시간도 필요하다 >
어느 날 사가랴가 제사장 직무를 이행하려고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며 기도할 때 천사가 나타나 아들을 주겠다는 소식을 전하며 이름을 ‘요한(여호와는 은혜롭다)’이라 부르라고 했다. 그때 사가랴는 자신과 아내가 늙었기에 그 약속을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말했다(18절). 결국 불신적인 말로 인해 그는 약속의 성취 때까지 일시적으로 말을 못하게 되었다(20절). 그러나 그것이 한편으로는 은혜와 축복이었다. 그 기간에 듣기만 하면서 자기 언행을 성찰하고 선한 다짐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수많은 의문이 생긴다. 그런 의문에 대해 대화를 많이 하면 의문이 풀리기보다 오히려 커질 때가 많다. 교회 생활에서 입술이 너무 많이 사용되지 않도록 하라. 성도의 가장 복된 태도 중 하나는 내 말을 하나님이 듣게 하려는 태도는 줄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들으려는 태도는 늘리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 때 사람들이 마스크를 쓴 모습을 보면 “이제 조금 더 침묵을 배우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같다.
조용히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도 생각하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삶과 의로운 소수의 길을 걷는 삶을 새롭게 다짐하라. 기도는 하나님께 내 요구를 속사포처럼 나열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진지하게 듣는 것이 우선이다. 또한 성경 말씀도 듣고 순종하는 기준으로 삼아야지 자기 말과 주장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삼으면 안 된다.
결국 사가랴가 말을 못하게 된 것은 조금 더 듣는 훈련을 할 기회가 되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였다.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말하는 입이 잘 열리기 전에 듣는 귀부터 잘 열려야 한다. 하나님이 입은 하나로 만들고 귀는 둘로 만드신 것은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2배로 하라는 뜻이 내포된 것 같다. 말을 절제하고 때와 상황에 맞는 말을 깔끔하게 하면 사랑과 권위를 동시에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