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장 11-13절
11 그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이 이 모든 재앙이 그에게 내렸다 함을 듣고 각각 자기 지역에서부터 이르렀으니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라 그들이 욥을 위문하고 위로하려 하여 서로 약속하고 오더니 12 눈을 들어 멀리 보매 그가 욥인 줄 알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일제히 소리 질러 울며 각각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13 밤낮 칠 일 동안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고통이 심함을 보므로 그에게 한마디도 말하는 자가 없었더라
참된 친구 (욥기 2장 11-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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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문하고 위로하는 친구
왜 욥의 세 친구가 서로 약속하고 욥에게 왔는가? 욥을 위문하고 위로하기 위해서였다(11절). 위로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말도 솔직하게 해야 한다. 다만 그때도 조심스럽고 지혜롭고 때에 맞춰 하는 것이 위로이고 진실한 말도 웬만하면 단도직입적으로 하지 않으려는 자세가 위로하는 자세다. 아픈 책망을 충직하게 할 때도 위로하는 말로 할 줄 아는 거룩한 예술에 능한 성도가 되라.
영성을 과시하는 신자들은 말한다. “믿음이 예술인가? 믿음이 인격을 키우는 것인가? 오직 예수지.” 그렇게 싹과 가지가 없는 말을 믿음과 영성이 있는 말처럼 서슴지 않게 하는 사람이 있다. 영성을 과시하는 사람이 크게 오해하는 것이 있다. 그가 “오직 예수야!”라고 수시로 말하면 사람들이 자신이 오직 예수로 사는 사람으로 알아 줄 것이란 오해다. 예수님의 영광을 가리면서 “오직 예수야!”라는 말을 수시로 하는 것은 부끄러운 행동이다.
2. 마음으로 함께하는 친구
욥을 멀리서 본 세 친구는 그의 외모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히 상한 것을 보고 일제히 소리 질러 울며 각각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렸다(12절). 왜 그렇게 했는가? 욥과 마음으로 함께했기 때문이다. 참된 친구가 되려면 타인 감수성을 가지고 감정 소통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사람에게 가장 예민한 것이 감정이다. 아무리 잘해 주어도 감정 소통이 없으면 진심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
남을 위한 삶도 소중한 삶이지만 남과 함께하는 삶은 더욱 소중한 삶이다. 남을 위한다는 삶은 남보다 내가 우위에 있는 존재란 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지만 남과 함께하는 삶은 남과 나를 동등한 존재로 본다는 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남과 함께하지 않으면서 남을 위한다는 삶을 통해서는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해도 남과 함께하면서 남을 위한다는 삶을 통해서는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몸과 마음으로 함께하고 상대의 약점과 허물까지 받아들이면서 늘 보고 싶은 참된 친구가 될 때 참된 친구를 얻는다.
3. 말을 절제할 줄 아는 친구
욥의 세 친구는 밤낮 칠 일 동안 욥과 함께 땅에 앉아 있으면서 그의 심한 고통을 보았기에 그에게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13절). 그것도 위로다. 탈무드는 상주가 입을 열기 전까지 조문객들은 먼저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처럼 깊은 고난 중에 있는 사람 앞에서는 말을 힘써 절제하라. 때로는 침묵이 최고의 설득력을 갖춘 최대 웅변이고 값싼 위로보다 훨씬 능력 있는 위로가 된다. 극심한 고난 중에 있는 사람에게 몇 마디의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 앞에서는 침묵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모습이다.
성경을 조금 안다고 해서 친구의 고난을 쉽게 해석하거나 교회에 오래 출석했다고 친구 앞에서 쉽게 설교하지 말라. 특히 고난이 죄 때문이란 말은 가장 조심해야 한다. 더 나아가 입술만 침묵하지 말고 비유적인 표현으로 흘기는 눈도 침묵하라. ‘죄가 있어서 그런 것 아닌가?’라는 의심의 눈빛을 삼가라. 그저 들어 주고 함께 있어 주고 묵묵히 함께 느껴 주면 친구가 예상보다 빨리 고난을 극복하고 일어설 수 있다. 결국 희생해야 참된 친구를 얻을 수 있다. 무엇을 희생해야 하는가? 특별히 말하고 싶은 마음을 참고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
< 먼저 좋은 친구가 되라 >
말보다 행동을 많이 하라. 말이 많아지면 확률적으로 실수도 많아지고 허풍도 많아지고 위선도 많아지고 거짓도 많아진다. 좋은 친구가 되려면 말에 실수가 적도록 말을 줄일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만물을 지으셨지만 사람은 말로 혼돈을 만들어 낸다. 말로 인해 상처를 주고받으며 인간관계가 깨질 때가 얼마나 많은가? 말을 아낄 줄 알아야 인생을 아낄 수 있고 입술을 지킬 줄 알아야 인생을 지킬 수 있다.
목사가 교인의 말로 큰 상처를 입으면 어떻게 하는가? 바로 반박하지도 않고 그 주간에 강단에서 그의 잘못된 태도를 지적하듯이 설교하지도 않는다. 대신에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합당한 말씀을 통해 그가 깨닫게 하소서.” 그런 목사가 대개 좋은 교인을 얻듯이 대화할 때 상대의 잘못된 점을 바로 지적하거나 반박하지 않는 사람이 좋은 친구를 얻는다. 늘 타인 감수성이 넘치는 위로의 말과 지혜로운 침묵으로 좋은 친구가 되고 좋은 친구를 얻으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