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장 26-27절
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낮다고 자처하면 높아진다 (누가복음 1장 26-27절)
< 힘을 과시하지 말라 >
예전에 ‘바보 목사’로 불린 북한 출신의 한 목사가 있었다. 그는 웅변도 몰랐고 쇼맨십도 없었다. 대형 교회 목사지만 소매가 닳은 옷을 입었고 고급차도 타지 않았다. 교회 세습을 꿈꾸지 못하도록 외아들을 외국으로 보내 버렸고 후배 목사들이 통일 운동을 한다고 북한을 제집처럼 드나들 때도 고향에 못 간 많은 실향민을 두고 자기만 갈 수 없다면서 바보처럼 한 번도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천국 본향으로 갔다.
사랑이란 힘이 있어도 힘을 감추거나 버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힘이 있으면 힘을 과시하고 싶어 하고 힘 앞에 남들이 벌벌 떨면 쾌감을 느낀다. 그래서 학벌과 연줄에 목을 매고 힘이 있는 곳으로 몰리지만 힘의 논리로 살면 어둠의 세력은 커지고 영혼은 길을 잃는다. 예수님은 전능한 힘을 가지셨지만 그 힘을 감추거나 버리셨고 힘이 있는 곳보다 힘이 없는 곳을 찾아 힘없는 사람을 섬기셨다.
말세에 가장 필요한 것이 따뜻한 사랑이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임하신다.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정작 메시아가 임할 마음의 준비를 못해서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으면 아무리 간절히 기도해도 성령님이 임하실 수 없다. 반대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성령님이 마음에 임하시면 더 이상 절망은 없다.
예수님은 이 땅에 강한 힘을 가진 문제 해결사가 아닌 연약한 모습을 한 희망 메이커로 오셨기에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만 생각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이 넘친다. 화려한 것만 좇지 말고 힘을 숭상하거나 과시하지도 말라. 겸손하게 예수님을 모실 마음의 구유를 준비하면 삶에서 비틀거림은 사라지고 영혼에 깊은 평화가 깃들 것이다.
< 낮다고 자처하면 높아진다 >
어느 날 천사 가브리엘이 갈릴리 나사렛에 사는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마리아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러 왔다(26-27절). 지금도 가브리엘 천사가 수시로 좋은 소식을 전해 주면 좋겠지만 그런 신비한 기적만 좋아하지 말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더욱 복된 삶은 서로 좋은 소식을 전해 주는 천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좋은 일을 바라는 것’보다 ‘좋은 일을 행하는 것’을 더 원하신다.
하나님은 인류 구원을 위해 갈릴리 나사렛의 평범한 시골 처녀 마리아를 택하셨다. 메시아는 예루살렘 출신이어야 할 것 같은데 가장 소외된 지역 중 하나였던 갈릴리 나사렛 출신이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만 공생애 이전에는 대부분의 생애를 나사렛에서 사셨다. 그 사실을 보면 하나님의 뜻은 사람의 뜻과 다름을 깨닫는다.
힘과 다수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 물론 힘을 버리라는 말이 힘을 갖추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실력과 능력을 힘써 갖추라. 재물도 바르게 추구하라. 예루살렘 교회가 든든히 선 데는 재력을 갖춘 바나바의 역할이 컸다. 최초의 이방인 신자였던 고넬료도 재력과 권력이 있었고 최초의 유럽 신자로서 사도 바울의 선교를 힘써 도왔던 루디아도 상당한 재력가였다. 그들은 능력과 재력이 있었지만 하나같이 겸손했다.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큰 일을 하는 사람은 단순히 능력과 재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겸손히 섬길 줄 아는 사람이다. 능력과 재력과 권세가 있으면서도 겸손히 섬기는 사람은 더욱 큰 일을 할 수 있다. 능력 문제에서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라는 자세로 살고 태도 문제에서는 ‘낮은 데로 임하소서’라는 자세로 살라. 높다고 자처하면 낮아지고 낮다고 자처하면 높아진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