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장 46-52절
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48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49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50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51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정상적인 과정을 따르라 (누가복음 2장 46-52절)
< 순종적인 성품을 가지라 >
사흘 후 마침내 성전에서 예수님을 찾았는데 보니까 예수님이 선생들 중에 앉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했다(46절). 그 장면을 보면서 주변 사람들은 다 예수님의 지혜와 대답으로 인해 놀랐다(47절). 요셉 부부도 놀랐다. 그때 마리아가 물었다. “아이야! 왜 이렇게 했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며 너를 찾았다(48절).” 열두 살의 아들이 당대의 석학들과 당당하게 토론하는 장면을 보고 평소에 느끼던 자녀의 신성을 새롭게 느꼈겠지만 여전히 예수님의 실체를 잘 몰랐기에 그동안 걱정했던 감정을 표했다.
그때 예수님은 공손하면서도 단호하게 말씀했다. “왜 나를 찾으셨나요?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요?” 예수님은 육신의 부모를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인류 구원의 큰 사명을 이행해야 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계셨다. 예수님의 그 말씀의 실체를 요셉과 마리아는 깨닫지 못했다(50절). 다만 마리아는 그 모든 말을 마음에 기억해 두었다.
그 후 예수님은 나사렛으로 돌아가 부모에 대해 순종하여 받드셨다(51절). 공생애 전 어느 시점에는 요셉의 죽음으로 예수님이 가장 역할을 했을 것이다. 결국 순종하여 받드시는 성품으로 예수님은 점점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워 가셨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이 육신적인 부모에게 순종한 것은 순종의 가치를 잘 말해 준다. 순종적인 성품을 가지면 사랑도 넘치게 받고 축복의 문도 활짝 열린다.
< 정상적인 과정을 따르라 >
외경 복음서들은 예수님이 공생애 전에 행하신 여러 기적을 언급하며 예수님의 신성을 높이려고 했지만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정상적인 성장 과정을 거치셨음을 언급한다(52절). 그런 언급은 예수님의 신성을 약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예수님이 철저히 인간이 되셨음을 나타내며 성육신의 사랑에 더욱 감동하게 만든다.
어떤 사람은 ‘정상적인 것’보다는 ‘환상적인 것’만 좋아해서 환상적인 얘기가 있어야 신성이 증대된다고 여긴다. 그런 환상적인 방식을 동원했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몇 가지 기적만 펼치셔도 전 세계 모든 인류를 단기간에 예수님을 믿게 하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환상적인 기적을 동원하면 보지 못하고도 믿는 믿음의 원리가 소용없게 된다.
하나님은 마술적인 신앙을 결코 기뻐하시지 않는다. 마술사들의 눈속임은 대단하다. 눈 깜짝할 새에 옷을 다 갈아입는 마술도 신기하지만 그보다 훨씬 신기한 마술도 많다. 보통 사람은 아무리 봐도 그 비밀을 잘 알아채기 힘들다. 마술로도 보통 사람들을 속이기 쉽기에 마술 신앙에 빠지면 영혼이 교주의 노리개가 될 수 있다. 신기한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신기한 것으로 신앙 기초를 세우지 말라.
환상적인 기분과 환상적인 얘기만 좋아하지 말라. 그것이 신앙생활의 기본이 되면 영혼이 위험해진다. 성경은 특별한 기록 의도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예수님을 환상적으로 그려 내지 않는다. 몇몇 외경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관한 환상적인 얘기들을 기록하고 있지만 성경은 그런 기록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한다.
예수님은 인간 가정에서 태어나 인간이 겪는 모든 과정을 겪으셨다. 그 과정을 보여 주려고 예수님의 어린 시절 얘기가 잠깐 성경에 기록된 것이다. 결국 탄생 후에 공생애를 시작할 30세까지 예수님이 행하신 초자연적인 기록을 성경이 배제한 것은 기적 중심적인 신앙을 주의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펼쳐진 인간적인 과정도 마땅히 필요한 과정임을 예수님의 인간적인 성장 과정이 잘 교훈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