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7장 11-14절
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12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진리와 진실을 따라 살라 (누가복음 7장 11-14절)
< 예수님을 만나 동행하라 >
어느 날 예수님이 갈릴리 지방의 주 활동 무대인 가버나움의 남서쪽으로 약 40㎞ 떨어진 나인 성에 가셨다(11절). 성문에 가까이 이를 때 한 장례 행렬을 만났는데 많은 사람들이 한 과부의 죽은 독자를 메고 나왔다(12절). 당시 비참한 과부의 처지에서 마지막 소망이던 독자의 죽음은 그녀에게 큰 상심을 주었을 것이다. 누가는 ‘독자’와 ‘과부’란 단어를 통해 그녀의 참담한 심정을 잘 묘사했다.
그때 많은 성 사람들이 장례 행렬에 동참해서 그나마 작은 위안은 있었겠지만 그것으로 과부의 큰 슬픔을 달랠 수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때 과부가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이다.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고 많은 사람과 동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동행이 무엇인가? 너무 늦게 가지도 않고 너무 빨리 가지도 않는 것이다. 일할 때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적당히 하는 것도 필요하다. 사람들은 적당히 하는 것을 ‘적당주의’란 딱지를 붙여 나쁘게 여기고 심지어 죄처럼 여긴다. 그러나 눈치 보며 자기 할 일을 외면하는 ‘게으르고 얍삽한 적당함’은 나쁜 것이지만 한문의 뜻 그대로 ‘적절(適切)하고 합당(合當)한 적당함’은 나쁜 것이 아니다.
너무 서두르지 말라. 다윗은 왕이 되기까지 13년의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작품 인생을 만들려면 적어도 13년은 기다리고 인내하고 준비하라. 13년을 기다리고 성공하는 ‘13년짜리 인생’도 있지만 모세처럼 40년을 기다리고 성공하는 ‘40년짜리 인생’도 있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치열함과 냉철함을 겸비하고 일과 쉼을 겸비하라. 소낙비 은혜만 추구하지 말라. 비전을 살리고 영혼을 살찌우는 것은 이슬비 은혜다.
< 진리와 진실을 따라 살라 >
예수님은 장례 행렬의 과부를 보고 불쌍히 여겨 울지 말라고 하셨다(13절). 예수님의 말씀은 의례적이고 값싼 위로가 아니었다. 값싼 위로는 아무런 위로도 주지 못한다. 값싼 위로를 줄 바에는 차라리 그냥 울게 놔두라. 깊은 슬픔을 당한 자에게 충고처럼 들리는 말을 너무 쉽게 하지 말고 먼저 깊은 공감의 감정을 가지고 말보다는 따뜻한 사랑의 손길로 상대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라. 그런 조용한 사랑의 터치가 많은 말의 위로보다 더 중요하다.
그때 예수님은 죽은 청년의 관에 사랑의 터치를 하셨다(14절). 구약 율법에 의하면 죽은 자의 관에 손이 닿으면 부정하게 여겨졌다(레 22:4; 민 19:11).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율법을 초월해서 주저 없이 스스로를 부정하게 만드셨다. 그 사랑의 터치로 과부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처럼 여기며 긍휼한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셨다.
그때 관을 메고 가던 이들이 예수님의 뜻밖의 행위에 놀라 걸음을 멈추자 예수님이 말씀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죽은 청년에게 마치 산 사람에게 하듯이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신 사례는 성경에 세 번 나온다. 본문 외에 누가복음 8장에서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것과 요한복음 11장에서 나사로를 살리신 것이다. 그 모든 사례에서 예수님은 죽은 사람을 산 사람처럼 여기고 말씀했다.
예수님이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릴 때도 사람들은 딸이 죽었다고 했지만 예수님은 잔다고 하셨다.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것은 사실이고 잔다는 것은 진리다. 사실과 진리 사이의 차이로 세상 사람들은 성도의 믿음을 조롱한다. 상식과 사실대로 살면 핍박이 없지만 진리와 진실을 따라 살면 핍박이 많다. 그래도 진리와 진실을 따라 사는 것이 영성이다. 상식과 사실만 따라 살기보다 진리와 진실을 따라 살 때 죽은 비전이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