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7장 18-22절
18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알리니 19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이르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20 그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21 마침 그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신지라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넉넉한 마음으로 기다리라 (누가복음 7장 18-22절)
< 넉넉한 마음으로 기다리라 >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사소한 문제를 크게 비화시키는 사람이 있다. 평소에 겸손한 사람이 전략적이고 교훈적인 목적으로 문제 되는 것을 문제시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자신의 견해를 지나치게 내세우며 사소한 문제로 시비를 거는 것은 자신을 감추고 절제하는 훈련의 부족 탓도 있지만 때와 상황 변화를 기다리는 믿음의 부족 탓도 있다.
어떤 사람은 ‘복’과 ‘축복’이란 단어를 정확하게 쓰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언어 표현 하나를 두고 그렇게 비판하면 시비를 걸 일이 한둘이 아니다. 자기 존재 의미를 누구나 인정하는 실력을 통해 나타내지 않고 사소한 말 표현 하나 차이로 시비 걸듯이 나타내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니다. 언어 표현이 생물처럼 변한다는 사실에는 눈을 감고 작은 표현 차이로 자신의 존재를 조급하게 드러내려고 하면 오히려 더 추락한다.
어느 날 강에 배 두 척이 좌초되었다. 한 배의 주인은 급히 수많은 말을 동원해 끌어내려다가 배가 산산조각이 났다. 반면에 다른 배의 주인은 그냥 놔두고 다른 할 일을 했다. 얼마 후 큰비가 내리고 강물이 불어 오르자 배 주인이 나타나 쉽게 배를 좌초된 곳에서 끌어냈다. 큰 늪을 만나 인생의 배가 좌초되었을 때 상태 개선에 집착해 너무 서두르지 말고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침착하게 하나님의 은혜의 강물이 불어 오를 때를 기다리라.
상황을 반전시키는 가장 위대한 힘은 하나님의 때에 밀려오는 은혜의 조수다. 그 조수에 잘 편승하면 어떤 시련도 극복할 수 있다. 안 된다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인상 쓰면서 너무 서두르지 말라. 된다고 머리를 아래위로 흔들고 미소를 지으면서 넉넉하게 기다리라. 때가 되면 준비된 복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 의심을 이기고 기다리라 >
당시에 예수님의 놀라운 말씀과 사역 소문이 각처에 퍼졌고 나인 성에서는 과부의 죽은 아들까지 살렸다는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졌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그 모든 소문을 투옥된 세례 요한에게 알렸다(18절). 당시 그의 제자들 중 일부는 예수님을 따랐지만 예수님의 열두 제자처럼 온전히 따르지는 않았다.
당시 세례 요한은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불륜을 저지른 헤롯을 책망했다가 투옥되었다. 투옥된 후 처음에는 예수님이 놀라운 권세로 자신을 곧 구원할 것으로 여기고 평안했을 것이다. 그러나 구원의 역사는 없고 기다림이 계속되었다. 점차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예수님의 놀라운 사역 소식을 제자들로부터 듣고 다시 확신이 생겼다. 그처럼 확신과 의심 사이를 오가다가 마침내 제자 둘을 예수님께 보내어 여쭈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십니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릴까요?”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불신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예수님이 자기로부터 세례를 받을 때 이미 성령을 통해 메시야임을 알았고 자기 제자들이 예수님께로 떠나도 상처받지 않고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라고 했다. 예수님을 불신한 것이 아니라 옥살이가 계속되면서 의심 섞인 질문을 한 것이다. 그도 다른 유대인처럼 로마와 헤롯 세력을 제거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할 정치적인 메시야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세례 요한에게도 잠깐의 의심은 있었지만 곧 이겨 내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순교해서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충실히 마쳤다. “어떻게 세례 요한 같은 사람이 의심하나?”라고 쉽게 말하지 말라. 사람은 강철 로봇이 아니다. 믿음이 있다는 말이 의심이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살면서 의심의 순간도 간혹 찾아온다. 그 순간을 믿음으로 잘 이겨 내어 자기 사명을 다하고 때가 되면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것이 성도의 일생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