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7장 39-50절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49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하나님과 마음이 통하라 (누가복음 7장 39-50절)
< 하나님과 마음이 통하라 >
기도는 ‘필요의 표현’임과 동시에 ‘마음의 소통’이다. 기도를 통해 나의 마음도 토로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기도 하라. 그런 마음의 소통이 없이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한 여자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 마음으로 말했다.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39절).” 아마 이런 생각도 했을 것이다. “그 비싼 향유를 왜 낭비하는가? 차라리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지.”
예수님의 마음도 모르고 그는 예수님이 진짜 선지자라면 그녀가 죄인임을 알았을 것이고 그런데도 그 행동을 그냥 용납하면 진짜 선지자가 아닐 것이라고 스스로 판단했다. 그런 판단하는 마음을 아시고 예수님이 물으셨다. “시몬아! 오십 데나리온을 빚진 사람과 오백 데나리온을 빚진 사람이 있는데 갚을 수 없어서 둘의 빚을 탕감해 주면 누가 더 탕감해 준 사람을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했다. “많이 탕감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네 판단이 옳다.”라고 하시며 시몬에게 말씀했다.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다. 너는 내게 입 맞추지도 않았지만 그녀는 내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않았다. 너는 내 머리에 값싼 감람유도 붓지 않았는데 그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다. 그것은 그녀가 더 많은 죄를 탕감 받아 나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의 많은 죄가 사함 받았다.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한다(44-47절).”
그 말을 듣고 사람들이 속으로 말했다.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에게 말씀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50절).” 긍휼이 넘치는 예수님은 그녀의 마음을 받아 주셨다. 연약한 사람을 대할 때 예수님의 마음으로 대하라.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 어려운 이웃과 나누라 >
시몬은 율법은 열심히 지켰지만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외로우셨다. 요새도 교인은 많지만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은 적다. 누가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인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의 빚을 진 자로서 그 빚진 사랑을 갚으려고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이 긍휼히 여기시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힘써 도우라. 이웃을 위해 눈물을 흘리면 눈이 밝아진다. 영안이 있기를 원하면 관상 기도를 배우러 다니거나 예언의 은사를 가졌다는 사람을 쫓아다니는 집회 중독 신자가 되지 말라. 그 시간에 차라리 나눔을 힘써 실천하고 내가 섬기는 교회를 힘써 사랑할 때 영안이 좋아진다. 사람은 인색함의 감옥에서 벗어날 때 영안이 깊어지고 은총과 기쁨의 샘도 넘치게 된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께 많이 드려야 하지만 받으실 예수님이 세상에는 안 계신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한 일에 드리면 된다. 그때 꼭 염두에 두어야 할 드림의 중요한 기초 원리가 있다. 힘이 있는 곳이 아닌 힘이 없는 곳에 드리고 물질이 넘치는 곳이 아닌 물질이 없는 곳에 드리고 물질을 잘 쓰지 못하는 곳이 아닌 물질을 잘 쓰는 곳에 드리는 것이다. 드림만큼 나눔도 중요하다.
은혜는 ‘자기를 위한 보신의 삶’에서 ‘남을 위한 헌신의 삶’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은혜받은 자로서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려고 오셨다.” 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한 차원 더 나아가 “예수님이 나를 향해 죽으라고 하신다.”라고도 생각하라. 부활의 영광이 있기 전에 꼭 있어야 할 것이 ‘죽음’과 ‘버림’과 ‘나눔’이다. 은혜와 진리에 정통해지려면 나눔은 선택 과목이 아닌 필수 과목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