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4장 9-13절
9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10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11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2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지라 (로마서 4장 9-13절)
< 무할례 때 의롭게 된 아브라함 >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았던 때(창 15:6)는 86세에 이스마엘을 낳았다는 기록(창 16:16)에 의하면 86세 이전이다. 아브라함은 99세에 할례를 받았기에(창 17:24) 결국 그는 할례 받던 99세보다 한참 전인 86세 이전의 무할례 때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셈이 된다.
무할례 시에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것은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표시로서 받은 것이었다. 더 나아가 그가 무할례 시에 하나님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신 것은 아브라함이 할례 받은 자의 조상뿐만 아니라 할례 받지 않는 모든 사람의 조상으로 여기도록 하기 위해서였다(11절).
율법은 죄를 깨닫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위한 잣대로 주신 것이지 율법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상속자가 되게 하려고 주신 것이 아니다. 그래서 약속의 상속자가 되려면 율법에 속한 자나 율법에 속하지 않은 자나 모두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사도 바울은 논증했다.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얻는 길은 오직 믿음의 길밖에 없다. 그 믿음의 길을 처음 열었던 사람이 아브라함이었다.
인류에게는 3명의 시조가 있는 셈이다. 육신의 시조인 아담, 중시조인 노아, 그리고 믿음의 시조인 아브라함이다. 왜 아브라함이 믿음의 시조가 되었는가? 최초로 하나님과의 언약적인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먼저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을 믿을 때 복을 주신다. 아브라함은 도저히 아들을 낳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이삭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믿음의 시조가 될 수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큰 힘은 믿음의 힘이다.
<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지라 >
골리앗 한 명으로 이스라엘 전 백성이 벌벌 떨 때 17세의 다윗이 형들에게 도시락을 전달하러 전쟁터에 왔다가 골리앗을 보았다. 그의 키는 290센티미터였다. 그래서 아무도 상대하려고 나서지 못했다. 그 골리앗을 무서워하지 않았던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다윗이었다. 믿으면 담대해지고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보다 더 큰 힘의 원천은 없기 때문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지켜 준다면 무슨 두려움이 있겠는가? 다윗은 담대하게 나아가 결국 골리앗을 죽이고 믿음으로 승리했다. 힘든 시험의 장벽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신실한 믿음으로 나아가면 된다. 외형이 크지 않아도 믿음이 크면 점점 영향력도 커진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믿는 자를 만나 주시고 찾아 주신다. 늘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살라. 믿음만이 세상을 이기게 한다. 다른 것을 의지하면 세상에 지게 된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놀라운 축복을 원하면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지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민이란 자부심은 컸지만 환경과 상황에 따라서 수시로 원망하고 불평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박국 2장 4절에서 이런 말씀을 주셨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오직 믿음만이 사는 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믿음이다.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하면 반드시 주신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길에서 후퇴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가진 비전이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라면 반드시 이뤄진다. 더욱 확신을 가지고 그 비전을 위해 힘쓰고 기도하라. 기도할 때도 기도 제목에만 너무 집착하지 말라. 믿음의 기도란 ‘기도 제목의 성취를 믿는 기도’가 아니라 ‘선하신 하나님을 믿는 기도’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들으시는 하나님,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 후히 주시는 하나님’임을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믿음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