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30장
6/2(월) 예레미야(59) 항상 당당하게 살라 (렘 20:7-18)
6/3(화) 예레미야(60) 하나님의 복을 받는 길(1) (렘 21:1-14)
6/4(수) 예레미야(61) 하나님의 복을 받는 길(2) (렘 21:1-14)
6/5(목) 예레미야(62) 최후 승리를 얻는 길 (렘 22:1-19)
6/6(금) 예레미야(63) 심판을 축복으로 돌리는 길 (렘 22:20-30)
6/7(토) 예레미야(64) 참된 목자(1) (렘 23:1-8)
6/9(월) 예레미야(65) 참된 목자(2) (렘 23:1-8)
6/10(화) 예레미야(66) 말씀 중심적으로 살라 (렘 23:9-32)
6/11(수) 예레미야(67) 좋은 말을 많이 하라 (렘 23:33-40)
6/12(목) 예레미야(68) 회복의 은혜를 입는 길(1) (렘 24:1-10)
6/13(금) 예레미야(69) 회복의 은혜를 입는 길(2) (렘 24:1-10)
6/14(토) 예레미야(70) 꿈을 잃지 않는 삶의 복 (렘 25:1-14)
6/16(월) 예레미야(71)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라 (렘 25:15-38)
6/17(화) 예레미야(72) 사명적인 2대 삶 (렘 26:1-9)
6/18(수) 예레미야(73) 리더에게 필요한 자질(1) (렘 26:10-15)
6/19(목) 예레미야(74) 리더에게 필요한 자질(2) (렘 26:10-15)
6/20(금) 예레미야(75) 하나님이 복 주시는 사람 (렘 26:16-24)
6/21(토) 예레미야(76) 십자가를 기쁘게 지라 (렘 27:1-11)
6/23(월) 예레미야(77) 깨어 근신하고 기도하라 (렘 27:12-22)
6/24(화) 예레미야(78) 자기 변화를 추구하라 (렘 28:1-11)
6/25(수) 예레미야(79) 오래 쓰임 받는 길 (렘 28:12-17)
6/26(목) 예레미야(80) 성경적인 성공의 길(1) (렘 29:1-14)
6/27(금) 예레미야(81) 성경적인 성공의 길(2) (렘 29:1-14)
6/28(토) 예레미야(82) 비판보다 칭찬을 앞세우라 (렘 29:15-32)
6/30(월) 예레미야(83) 구원받은 자답게 사는 길 (렘 30:1-11)
마중물 : 진실한 사람이 되라
< 말씀에 힘써 순종하라 >
어느 날 미국에서 한 아들이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이제 제가 16살이 되었는데 운전면허를 따면 아빠 차를 몰아도 돼요?” 아빠가 대답했다. “차를 몰려면 책임감과 성숙함이 필요하다. 네가 3가지를 해서 성숙함을 보이면 허락하겠다. 첫째, 성적을 좀 더 올려라. 둘째, 매일 성경을 읽어라. 셋째, 머리를 짧게 깎아라.” 아들은 셋째 요건은 지키기 힘들 줄 알면서도 아빠 요구대로 자신의 책임감과 성숙함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했다.
얼마 후 아들이 환한 얼굴로 학교 성적표를 들고 와 말했다. “아빠, 보세요. 모두 A와 B를 맞았어요.” 아빠가 말했다. “잘했다. 3분의 1은 이뤘다. 요새 매일 성경을 읽니?” “예. 매일 읽어요.” “잘했다. 이제 3분의 2를 이뤘다. 그러면 언제쯤 머리를 깎을래?” 그때 아들이 진지하게 물었다. “아빠, 꼭 머리를 깎아야 성숙한 것인가요? 예수님도 머리가 길었잖아요? 저도 예수님처럼 살래요.” 아빠가 말했다. “그래. 예수님은 머리가 길었지만 대신 걸어 다니셨다. 너도 예수님처럼 그냥 걸어 다녀라.”
가끔 자녀가 자신의 요구를 이루려고 해괴한 논리를 내세운다. 그 논리와 변명이 수긍될 때도 있지만 더욱 힘써야 할 자세는 부모의 뜻과 소원을 존중하고 힘써 지혜롭게 따르려는 자세다. 가끔 부모가 하는 귀찮은 잔소리도 잠소리가 아닌 참소리로 들으려고 하라. 대부분의 잔소리는 잘 들으면 유익이 되고 때로 잘못된 정보로 사랑하는 사람이 잔소리를 할 때도 바로 맞받아치지 말고 일단 들어주려고 할 때 복의 대로가 활짝 열린다.
필자가 55세가 되었을 때 깨달은 삶의 진리가 있다. 약속 시간보다 10분 일찍 움직이면 많은 사람을 평안하게 할 수 있고 나 자신도 평안해진다는 진리다. 그 전에는 약속 시간에 맞춰 움직이니까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할 때도 많았다. 그러나 약속 시간보다 10분 일찍 움직이니까 지난 10년간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할 때가 거의 없었다. 상대를 위해 10분의 시간을 희생하기로 작정하니까 초조함과 조급함이 없이 평안도 얻고 상대를 존중하는 의미를 잘 전달해서 뿌듯한 기쁨도 얻었다.
그 후 필자가 60세가 되었을 때 깨달은 삶의 진리가 있다. 사소한 잔소리를 힘써 들으면 손해가 없다는 진리다. 가족의 사소한 잔소리도 힘써 들으려고 하니까 많은 유익이 있었다. 음식 문제, 건강 문제, 언행 문제, 신앙 문제, 시간 약속 문제 등과 관련한 사랑하는 사람의 잔소리를 귀찮게 여기지 않고 힘써 군소리 없이 들으려는 것이 진짜 사랑과 능력이고 그 사랑과 능력을 통해 신비한 하늘의 은혜가 임한다. 하나님의 말씀도 잔소리처럼 흘려듣지 않고 힘써 순종하면 더욱 신비한 하늘의 은혜가 임한다.
< 비판을 최대한 삼가라 >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있다. 바로 교만과 위선이다. 교만과 위선에 의한 습관적인 비판을 삼가라. 때로는 내가 비판받는 사람보다 더 잘못할 때도 많음을 기억하고 비판은 줄이고 헌신은 늘리라. 그처럼 비판하는 문제에서도 주의가 필요하지만 비판받는 문제에서도 주의가 필요하다. 정당한 비판은 기쁘게 수용하되 바리새인의 비판에는 쉽게 흔들리지 말라. 남의 비판에 “너는 잘났냐? 네가 뭔데 그러냐?”라고 반박하고 따지면 같이 추해진다.
미국의 유명한 설교가 라이먼 비처가 남의 비판에 전혀 반박하지 않자 누군가 말했다. “그런 엉터리 주장에 왜 적극 반박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그 주장이 맞는 줄 알 것입니다.” 비처가 대답했다. “제가 그러는 이유가 있어요. 제가 청년 때 밤에 들판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작은 짐승이 나타나 깜짝 놀라 손에 있던 책을 던지자 곧 풍겨나온 지독한 스컹크 냄새로 죽는 줄 알았어요. 그 후로 저는 그런 작은 짐승은 그냥 내버려 두겠다고 결심했어요.”
스컹크는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상책이다. 비판에 일일이 반박하면 더 악취가 생기고 자신도 더 추해진다. 웬만한 비판은 그냥 하게 놔두라. 정적들로부터 미국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은 반역자, 위선자, 사기꾼이란 소리를 들었고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은 똑똑한 바보, 탁상공론자란 비난을 받았고 링컨도 비열한 놈, 흉악한 놈, 거짓말쟁이, 그리고 원숭이란 비난과 놀림을 받았다. 그래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맡은 일에 힘써서 결국 큰 인물이 되었다.
사도 바울도 나사렛 이단의 우무머리란 소리를 들었고 심지어는 예수님도 귀신들린 자,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자, 세리와 죄인의 친구란 비난을 들었다. 그렇다면 어느 누구라도 그 이상의 비판을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 남의 비판에 쉽게 마음이 흔들리고 상처받았다고 신음하면 큰일을 하기 힘들다. 정당한 비판은 기쁘게 수용하고 바리새인의 비판에는 태산처럼 흔들리지 말라.
남의 비판에 상처 받지 말아야 한 최대 근거가 되는 사실이 있다. 세상에서 제일 비판을 많이 받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란 사실이다. 하나님은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비판과 원망을 받으신다. 심지어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에게서도 비판과 원망을 받아 상처를 입으신다. 그러면서도 묵묵히 우주를 이끌고 계신다. 사랑하는 가족으로부터 비판과 원망을 받아도 너무 상처 받지 말고 계속 사랑하면서 묵묵히 자신의 사명을 따라 살면 누군가의 원망과 비판은 다른 누군가의 사랑과 감사로 변해 되돌아올 것이다.
< 진실한 사람이 되라 >
남을 쉽게 비판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태도가 있다. 바로 외식하는 태도다. 하나님은 말은 있지만 행동은 없는 외식을 싫어하신다. 어떤 사람은 사랑한다는 말은 잘했지만 행동이 따르지 않아 6번 결혼했다. 하나님은 외식적인 사랑의 표현보다 진실한 마음을 더 원하신다. 외식은 감동을 만들기보다 갈등을 만든다. 외식하는 사람의 삶의 기준은 자신이다. 자기중심주의는 무서운 병이다. 그 병을 말씀으로 잘 깨뜨리고 열린 마음과 진실한 마음을 가지라.
전통에 매이지 말라. “전에는 이렇게 했는데... 이전 교회에서는 이랬는데...”라고 과거의 전통에 집착하면 전통을 진리로 오해하는 바리새인의 모습이 나타난다. 물론 전통도 필요하다. 열린 마음을 내세워 전통을 무시하면 질서를 잃는다. 반대로 전통을 내세워 마음이 너무 닫혀도 안 된다. 가나안의 복을 얻으려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교회 생활을 할 때 질서도 지키고 나이와 직분과 자리도 존중하고 교회 방침과 교회 전통도 존중하라. 그처럼 공동체의 틀을 존중하면서도 늘 열린 마음과 관용 정신을 가지라.
위선의 옷을 벗고 더욱 진실하게 되길 힘쓰라. 예수님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구제할 때 나팔을 불지 말라고 하셨다(마 6:1-2). 헌금하고 선교하고 구제할 때 남을 의식하며 하는 것은 외식이다. 남을 위해 중보기도를 할 때 “내가 기도하고 있어요.”라고 너무 나타내지 말라. 기도하면 응답받지만 기도하는 삶을 나타내면 응답이 멀어진다. 타인 감수성은 가지되 지나친 타인 의식은 삼가라. 의식이 외식을 낳는다. 외식하는 헌금과 기도와 봉사는 복의 재료가 되지 못한다.
한때 한국 교회는 많은 외식의 죄를 저질렀다. 예전에 일부 부흥사들은 헌금자의 이름을 강단에서 10분 이상 읽었다. 세계에서 예배 시간에 헌금자의 이름을 읽는 종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오지의 식인종으로 지내다가 변화된 교인들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헌금자의 이름을 공개하면 더 많은 헌금이 나오겠지만 중요한 것은 진실한 마음이 깃든 헌금이다. 항상 외형보다는 내용을 추구하는 진실함을 갖추라. 말로 염려해 주는 것도 고마운 일이지만 말없이 행동으로 염려를 덜어 주는 것은 더욱 고마운 일이다.
일전에 전혀 만나본 적이 없는 성도가 <월새기(월간새벽기도)> 문서선교를 위해 큰 후원금을 말없이 입금했다. 필자가 감사 문자를 보내자 이런 짤막한 답장 문자가 왔다. “말씀으로 은혜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저 작은 감사 표현일 뿐입니다.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오히려 제가 감사합니다.” 그런 겸손하고 진실한 마음이 담긴 선교 헌금을 받으면 사역에 큰 힘이 된다. 그런 소리 없는 진실한 후원자들로 인해 <월새기> 사역이 지금까지 계속될 수 있었다.
하나님 앞에서 마치 벌거벗은 존재처럼 늘 진실하길 힘쓰라. 사람은 원죄를 짓고 몸을 가리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시선을 피하고 거짓과 위선의 옷을 입으며 살아왔지만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 앞에 숨길 것도 없고 숨길 수도 없고 숨길 필요가 없는 진실한 성도가 되어야 한다. 진실하면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지 않아도 남들이 높여 준다. 무엇인가 있는 척 하면서 자신을 높게 보이려는 위선을 버리면 조만간 풍성한 복이 따라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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