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남의 불행은 나에 대한 경고다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한 사건은 약 2600년 전에 유다 땅에서 일어났던 사건만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내게도 회개의 삶을 도전하는 예표적인 사건이다. 흔히 유대인에 대해 붙인 선민이란 말은 특권적인 선민이 아니라 예표적인 선민이란 말이다. 즉 유대인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민족이란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른 사람과 다른 민족의 본보기로 선택한 민족이란 말이다.
유다 멸망에 관한 말씀을 통해 지금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을 깨달으라. 하나님은 나를 깨닫게 하는 사건 전에 나를 깨닫게 하는 말씀을 주신다. 말씀을 나의 완악한 심령을 깨뜨리는 망치처럼 받아들이라. 이단 교주의 기복주의적인 헛된 말은 많은 사람에게 욕망이 절제되고 극복되게 하는 경고용 쇠망치가 되기보다 오히려 욕망이 자극되고 부풀려지게 하는 달콤한 사치품처럼 되고 있다. 말씀을 헛된 욕망을 줄이고 신앙 이성을 되찾게 하는 도구로 삼지 않으면 조만간 감당하기 힘든 일이 생긴다.
경고용 말씀을 외면하면 경고용 사건이 터진다. 지금도 믿음 회복과 교회 회복을 도전하는 하나님의 애타는 음성을 말씀을 통해 들으려고 하라. 예수 정신이 사라지고 화려한 기적과 은사를 추구하면서 기복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믿음 생활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짓다 만 건물처럼 흉물로 여겨질 것이다. 그 건물은 언젠가 폭파되거나 거대한 포클레인으로 부서져 철거될 것이다.
반에서 학생들이 떠들면 선생님이 떠들지 말라고 강대상을 친다. 강대상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떠들면 안 된다는 경고다. 그래도 계속 떠들면 한 명을 뽑아 야단친다. 그들도 조심하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는 뜻이다. 가끔 보면 나보다 큰 잘못을 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모든 고난을 한꺼번에 진 것처럼 고생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그가 나보다 크고 많은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나를 향한 회개를 도전하는 경고성 사례일 수 있다.
남에게 일어난 일을 나의 성찰의 계기로 삼는 지혜가 없으면 그다음은 내 차례가 될 수 있다. 그처럼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볼 때마다 나와 연관해서 생각하는 자세를 갖추라. 그것은 내게 경고일 수 있다. 그래서 칼 발트는 그리스도인은 한 손에는 성경을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신문을 들고 생각하며 살라고 했다. 남의 불행을 내게 주는 경고로 받아들이고 내가 새로워지는 계기로 삼으라. <25.7.28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