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장
10/1(수) 마태복음(25) 애통하는 자의 복(1) (마 5:4)
10/2(목) 마태복음(26) 애통하는 자의 복(2) (마 5:4)
10/3(금) 마태복음(27) 온유한 자의 복(1) (마 5:5)
10/4(토) 마태복음(28) 온유한 자의 복(2) (마 5:5)
10/6(월) 마태복음(29)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1) (마 5:6)
10/7(화) 마태복음(30)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2) (마 5:6)
10/8(수) 마태복음(31)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1) (마 5:7)
10/9(목) 마태복음(32)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2) (마 5:7)
10/10(금) 마태복음(33)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1) (마 5:8)
10/11(토) 마태복음(34)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2) (마 5:8)
10/13(월) 마태복음(35) 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1) (마 5:9)
10/14(화) 마태복음(36) 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2) (마 5:9)
10/15(수) 마태복음(37) 박해를 받은 자의 복(1) (마 5:10-12)
10/16(목) 마태복음(38) 박해를 받은 자의 복(2) (마 5:10-12)
10/17(금) 마태복음(41) 요긴한 리더가 되는 길(1) (마 5:13)
10/18(토) 마태복음(40) 요긴한 리더가 되는 길(2) (마 5:13)
10/20(월) 마태복음(41) 아브라함의 복을 꿈꾸라(1) (마 5:14-16)
10/21(화) 마태복음(42) 아브라함의 복을 꿈꾸라(2) (마 5:14-16)
10/22(수) 마태복음(43) 일등급 성도가 되는 길(1) (마 5:17-20)
10/23(목) 마태복음(44) 일등급 성도가 되는 길(2) (마 5:17-20)
10/24(금) 마태복음(45) 너무 미워하지 말라(1) (마 5:21-26)
10/25(토) 마태복음(46) 너무 미워하지 말라(2) (마 5:21-26)
10/27(월) 마태복음(47) 참된 사랑을 흘려보내라(1) (마 5:27-32)
10/28(화) 마태복음(48) 참된 사랑을 흘려보내라(2) (마 5:27-32)
10/29(수) 마태복음(49)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1) (마 5:33-37)
10/30(목) 마태복음(50)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2) (마 5:33-37)
10/31(금) 마태복음(51) 더 해야 할 일 3가지(1) (마 5:38-42)
마중물 : 지속 가능한 성장과 행복
< 후대를 생각하며 살라 >
인생을 잘 관리하려면 물질 관리와 사람 관리를 잘해야 한다. 그와 더불어 자연 관리도 잘해야 한다. 자연 관리는 미래 세대를 위해 꼭 필요하다. 하나님의 창조물 중 가장 늦게 창조된 사람의 자연 파괴로 인해 다른 창조물들이 큰 수난을 겪고 있다. 결국 사람은 지구란 하나님의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처럼 되었다. 지금 과학 문명에 의한 대기 오염으로 많은 생물이 살 터전을 잃거나 멸종되고 있다. 자연의 파괴는 사람의 파멸을 예고한다. 지금 내가 자연 보존에 일조하는 것은 나의 후대가 행복하고 풍성하게 살아갈 터전을 닦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무덤을 죽은 시신의 귀신이 떠도는 무서운 곳으로 여기지만 성도에게는 무덤조차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을 통해 천국 소망과 삶의 희망이 새로워지는 곳이 될 수 있다. 후대를 위해 좋은 발자취를 남기고 좋은 삶의 영상과 기록을 남기라. 선대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신실하게 살다가 천국에 가면 그 헌신의 씨로 인해 후대가 복을 받고 더 나아가 선대가 신실하게 살았다는 사실 자체로 인해 후대가 선한 도전을 받고 더욱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어떤 선대는 나쁜 기억만 남겨 후대가 선대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싶어 한다. 선한 영향력이 당대에서 끊긴 셈이다. 어떤 선대는 자녀는 물론 손주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선한 영향력이 3대까지 미친 셈이다. 복된 인생이다. 아브라함은 선한 영향력이 100대 이상을 미치면서 대대로 복 받게 한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그런 믿음의 조상을 꿈꾸라. 나 혼자 잘살다가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살지 말라. 내가 잘 살아서 후대가 바르고 복된 길을 가도록 길을 열어 주고 환경을 마련해 주라. 더 나아가 많은 사람에게 복된 길을 열어 주라.
앞으로 어떤 비극적인 재앙이 지구에 닥칠지 모른다. 그런 재앙이 없도록 기도하고 힘쓰라. 욕심에 젖어 돈을 더 벌려고 남의 불행과 미래 세대의 불행에 눈을 감는 것은 나와 나의 후대에게도 불행의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 오늘의 현실만 생각하지 말고 미래 세대까지 생각하라. 남을 변화시키려고 하기 전에 나를 먼저 변화시키라. 남이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는 것이 우선이다. 미래 세대를 위한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라. 나의 희생이 없이 미래가 희망적으로 될 수는 없다.
요새 경영학 원리로 ‘지속 가능한 성장’이란 말이 많이 언급된다. 기업이 사회적인 책임을 다해야 성장이 지속된다는 뜻이다. 성도는 대대로 복 받는 삶을 위해 ‘지속 가능한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 남의 행복을 생각하고 미래 세대가 복 받는 길을 닦으라. 자연 보존을 위해 불편을 즐길 줄 아는 ‘즐거운 불편함’도 필요하면 감수하라. 하나님께 돌아서는 회개는 하나님의 창조물을 아끼는 마음의 회복을 수반해야 한다.
< 드리는 삶을 앞세우라 >
대대로 복 받는 삶을 살려면 드릴 줄 아는 삶에 익숙해지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받을 생각보다 드릴 생각을 앞세우면 오히려 더 받는다. 물론 더 받을 것을 계산하며 드리기보다 계산하지 않고 순수하게 드릴 때 더 받는다. 왜 헌금하는가?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삶의 핵심 표식이다. 그 헌금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보양하고 하나님의 종들의 생계를 위해 사용한다. 헌금 강요는 잘못된 것이지만 헌금 책임은 소중한 것이다.
목회자는 거룩한 존재이기에 먹는 문제에 초연해야 한다면서 목회자의 생계유지에 무관심하거나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잘못이다. 하나님은 목회자의 의식주 문제를 책임져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그 책임을 함께 공유하려고 할 때 하나님이 그 책임을 이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이다. 결국 성도의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삶의 표식이면서 공동체의 책임적인 일원이 되는 행위이고 드리고 나누고 베푸는 삶의 체질화를 통해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자신을 극복하는 큰 복을 얻게 만든다. 그러므로 헌금 생활에서 인색함이 없도록 하라.
어느 날 한 사람이 큰 은혜를 받고 목사를 찾아와 말했다. “목사님, 제가 7년간 교회를 다니면서도 십일조 생활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7년간의 십일조를 한꺼번에 낼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십일조를 드리지 않고도 남은 것이 없게 된 셈이다. 목사가 위로했다. “괜찮습니다. 이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복 주셔야 십일조를 드리면서도 남은 것이 있게 된다. 혹시 남은 것이 없어도 십일조를 드리고 없게 된 것과 십일조를 드리지 않고 없게 된 것은 의미 차이가 크다.
성도가 십일조를 외면하고 모으기만 하면 나중에는 비유적인 의미로 그 돈을 병원에 주거나 사기꾼에게 사기당해 주거나 교통사고 보상비로 주거나 이혼 위자료 등으로 주게 된다. 즉 성도에게 돈은 자원해서 거룩하게 드려지든지 혹은 불의한 일로 강제로 빼앗기든지 둘 중의 하나로 귀결된다. 성경은 하나님께 드리는 삶이 없으면 영혼은 물론 땅과 나라와 민족도 궁핍해진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만큼 십일조 생활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한 사람이 십일조를 결단하고 실천하면서 5가지의 놀란 사실을 고백했다. “첫째, 처음 십일조를 뗄 때 살을 도려내는 것처럼 아파서 놀랐습니다. 둘째, 그래도 계속하자 기쁨이 넘쳐서 놀랐습니다. 셋째, 9할의 수입으로 살면서 삶의 지혜가 생기고 수입이 늘고 삶이 풍성해지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넷째, 점차 십일조를 드리는 날에는 교회에 더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놀랐습니다. 다섯째, 결국 십일조 생활로 나의 삶과 마음이 풍요롭게 된 것을 보면서 십일조의 복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놀랐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이 많이 나오는데 유일하게 하나님을 시험하라는 말씀이 십일조와 관련된 말씀에서 나온다. 즉 십일조를 드린 후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않는지 시험해 보라고 하셨다(말 3:10). 나의 믿음이 진실한 믿음이라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삶에 탁월해지라. 그리스도는 비움의 삶을 사셨는데 크리스천이 채움에 집착한다면 결코 복된 모습이 아니다. 이기주의와 탐욕에 사로잡히지 말고 드리고 나누고 베푸는 삶에 탁월해질 때 대대로 복 받는 길이 펼쳐진다.
< 나의 전부를 드리라 >
지속 가능한 성장과 행복이 있게 하려면 눈물의 기도도 중요하다. 나의 기도의 눈물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후손들의 눈물을 덜어 주는 역사를 일으킬 것이다. 실제로 많은 가정에서 선대의 눈물로 후대가 웃을 수 있었다. 특히 선대의 눈물의 기도는 더욱 후대를 웃게 만들 것이다. 가장 위대한 눈물은 역시 십자가의 눈물이다. 십자가가 무엇인가? 나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전에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것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먼저 채우려는 마음이다. 그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 지난 11년간 <월간새벽기도> 사역이 유지될 수 있었다.
나의 전부를 바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길 때 하나님이 나의 삶에 기적적으로 역사하실 것이다. 성경에는 성령님을 근심시킨다는 표현이 있다. 언제 성령님이 가장 근심하시고 하나님이 가장 상처를 입으시는가? 하나님께 나의 전부를 드릴 생각은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받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때다. 하나님은 나의 믿음과 순종보다 나 자신을 더 원하신다. 하나님께 나 자신을 온전히 드려야 다른 많은 은혜가 따라온다.
미국 C&MA 창시자 심슨 목사를 비롯해 수많은 부흥사들이 제일 좋아한 찬송 중 하나가 <예수는 나의 힘이요>였다. 그 찬송의 원제는 <예수님은 나의 전부이시다(Jesus is All the World to Me)>이다. 하나님을 나의 전부로 알아야 작품 인생이 이뤄진다. 살면서 어떤 일로 남들이 나를 칭찬하면 겉으로는 기뻐하면서도 속으로는 나 자신을 더 지우고 예수님만 더 드러내는 삶을 새롭게 다짐하라. 그런 사람이 작품 인생이 된다.
영향력 있는 큰 교회들을 보면 한 사람이 하나님을 자신의 전부로 알고 헌신적으로 교회를 섬기면서 그렇게 성장한 경우가 많다. 그처럼 내가 변화되어 찬란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성공한 후 그 성공을 발판으로 나의 전부를 바치면 내가 섬기는 교회에도 부흥의 역사가 나타난다. 나를 바칠 줄 아는 변화된 한 사람이 되라. 하나님을 나의 전부로 알고 하나님께 나의 전부를 드리면 하나님도 나를 그분의 전부로 삼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을 나의 전부로 알고 내가 하나님의 전부가 되면 어떤 시련 중에도 절망할 필요가 없다. 시련조차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질적인 것으로 나를 채우려고 하지 말고 더욱 하나님을 추구하면 하나님의 복이 당대는 물론 후대까지 넘치게 될 것이다. 늘 하나님 앞에서 더 많이 드리고 나누고 베푸는 삶을 통해 대대로 복 받는 가문의 창시자가 되고 지속 가능한 성장과 행복의 역사를 이루어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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