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가장 지적인 만족감을 주는 진리는 역설의 진리이고 가장 큰 기쁨을 주는 삶은 역전의 삶이다. 최고 작품 인생은 대개 부서진 삶의 터전 위에 세워진다. 밀은 부서져 가루가 되어야 빵이 되고 음식물은 입에서 부서져야 영양분이 되듯이 작품 인생이 되려면 먼저 부서지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부서짐의 강도가 성숙의 정도다.
곡식은 도리깨질을 통해 알곡이 되듯이 인생도 도리깨질을 통해 알곡 인생이 된다. 고난은 내일의 작품 인생을 위해 더 부서지고 깨지고 죽는 과정이다. 대장장이가 달궈진 쇠를 때려 강력한 연철을 만들듯이 고난은 강력한 연철 인생을 만드시는 하나님의 도구다. 왜 하나님은 사랑하는 성도에게 고난의 시련을 겪게 하시는가? 죽어야 살고 버려야 얻고 쓰러져야 세워지고 부서져야 작품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강도 프로크루스테스는 자신의 집에 있는 철 침대에 행인을 붙잡아 누인 후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크면 그만큼 잘라 내어 죽이고 침대보다 작으면 억지로 침대 길이에 맞춰 늘여 죽였다. 결국 그의 침대에 눕혀지면 누구나 죽은 목숨이 되었다. 그처럼 자기 기준의 침대에 남을 맞추면 살아날 사람이 없다. 자신의 기준을 죽이는 길이 자신의 평안과 세상의 평화를 살리는 길이다.
누가 가장 진실한 성도인가? 하나님 앞에서 잘 엎드리고 하나님 안에서 잘 죽는 성도다. 어리석음이란 나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고 지혜로움이란 하나님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했다(고전 15:31). 하루만 죽고 한 번만 죽으면 사도 바울이 되지 못한다. 날마다 죽어야 평안도 얻고 살 길도 열린다. 왜 삶이 고단해지는가? 날마다 살려고 하기 때문이다. 왜 미움과 혈기와 불평과 원망과 열등감과 좌절감이 생기는가? 덜 죽었기 때문이다. 잘 죽는 길이 잘 사는 길이다. <25.9.17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