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8장 32절
32 너희가 그 중 아름다운 것을 받들어 드린즉 이로 말미암아 죄를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성물을 더럽히지 말라 그리하여야 죽지 아니하리라
십일조 생활의 복 (민수기 18장 32절)
< 십일조 생활의 복 >
레위인이 일반인에게서 받은 십일조는 성물인데 그 받은 것에서 다시 십일조를 제사장에게 드려야 성물을 더럽히지 않게 되어 죽지 않는다고 했다. 즉 레위인이 일반인에게서 받은 십일조 중 최상품을 골라 십일조로 제사장에게 드리지 않으면 큰 죄가 되어 죽을 수도 있다는 역설적 표현이다. 그만큼 십일조 계명을 중시했다.
말라기 3장을 보면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내게로 돌아오라.”라고 하셨다.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께 돌아갑니까?”라고 묻자 “말씀을 가까이하라. 간절히 기도하라.”라고 하시기보다 맥락에 안 맞는 것 같은 말씀을 하셨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말 3:8).”
어떤 사람은 궁금해 한다. '왜 하나님이 회개하라면서 돈 얘기를 하실까?' 그러나 십일조와 감사 헌금과 선교 헌금을 외면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회개가 없는 모습으로 보시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모습으로 보신다. 돈 문제를 잘 다루지 않으면 사탄에게 당한다. 돈은 가장 무서운 우상이 될 수 있다. 반면에 잘 사용된 돈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고 인생을 복되고 가치 있게 만드는 위대한 도구가 된다.
십일조 생활은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지만 목회자는 대체로 돈과 관련된 설교를 잘 못한다. 많이 헌금시키기 위해 돈 설교를 한다고 오해하는 교인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새 십일조 생활을 외면하는 교인들이 늘고 있다. 심지어 십일조는 구약의 율법이니까 신약 성도에게는 필요 없다는 이단 교주의 주장에 미혹되기도 한다.
이단 교주가 십일조를 구약 시대 율법이라면서 부정하는 주장을 하면 신령하게 보이지만 그의 전략은 따로 있다. 십일조를 하지 말라면서 영혼을 사로잡은 후 크게 집과 재산과 노동력을 탈취하는 전략이다. 그런 전략에 미혹되지 말고 십일조를 구약 율법으로만 보지 말라. 신실한 십일조 생활은 참된 회개와 관련이 깊고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일에 대한 성도의 책임 문제와 관련된 것이다. 하나님 앞에 책임적인 존재로 살라는 십일조의 계명을 단순히 구약 율법으로 여기며 경시하지 말라.
십일조에 대한 오해를 버리라.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부지런히 일해서 얻은 열 개 중 하나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십일조인 줄 알지만 사실상 열 개 모두가 하나님의 것이다. 결국 십일조의 참된 의미는 내가 10분의 1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10분의 9를 내게 주시는 것이다. 그 의미를 이해하고 행하는 십일조 생활은 놀라운 복의 씨앗이 된다. 왜 신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사랑하는 자식이 굶어 죽어도 종자를 먹이지 않았는가? 이듬해 씨를 뿌려야 했기 때문이다.
씨앗을 뿌려서 잘 가꾸면 100배의 수확을 할 수 있지만 그 씨앗을 먹어치우면 나중에 거둘 것이 없어진다. 십일조의 씨앗을 혼자 먹어치우지 말라. 자녀가 복되게 살기를 원하면 십일조 생활을 힘써 가르치라. 용돈에서도 십일조를 구별해 드리는 법을 가르쳐서 “네 인생은 하나님 앞에 구별된 인생이야.”라는 인식을 심어 주면 자녀는 인색해지지 않는 복된 성품을 얻고 때가 되면 가시적인 복도 얻을 것이다.
정결하고 정직한 삶을 추구하면서 욕심을 극복하도록 십일조 생활을 인생의 틀로 삼으라.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의 원리를 따라 살면 얼마든지 복된 삶을 살 수 있다. 십일조 생활은 사람을 복되게 하는 핵심 요소로서 하나님 우선순위의 삶과 회개의 진정성을 나타내는 행동 고백이다. 늘 온전한 십일조 생활로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일꾼을 위해 책임적으로 헌신해서 기쁨을 얻고 내일의 넘치는 복을 예비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