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5-19장
3/2(월) 마태복음(155) 나를 잘 관리하라(1) (마 15:12-20)
3/3(화) 마태복음(156) 나를 잘 관리하라(2) (마 15:12-20)
3/4(수) 마태복음(157) 쓰러지지 말고 엎드리라(1) (마 15:21-28)
3/5(목) 마태복음(158) 쓰러지지 말고 엎드리라(2) (마 15:21-28)
3/6(금) 마태복음(159) 기적을 예비하는 길 (마 15:29-39)
3/7(토) 마태복음(160) 성도답게 사는 길 (마 16:1-12)
3/9(월) 마태복음(161) 천국 교인이 되라(1) (마 16:13-20)
3/10(화) 마태복음(162) 천국 교인이 되라(2) (마 16:13-20)
3/11(수) 마태복음(163) 나의 가치를 확신하라(1) (마 16:21-28)
3/12(목) 마태복음(164) 나의 가치를 확신하라(2) (마 16:21-28)
3/13(금) 마태복음(165) 영안이 열리는 길(1) (마 17:1-13)
3/14(토) 마태복음(166) 영안이 열리는 길(2) (마 17:1-13)
3/16(월) 마태복음(167) 큰 역사를 일으키는 길(1) (마 17:14-21)
3/17(화) 마태복음(168) 큰 역사를 일으키는 길(2) (마 17:14-21)
3/18(수) 마태복음(169) 세상의 빛으로 사는 삶 (마 17:22-27)
3/19(목) 마태복음(170) 작은 척하는 큰 인물(1) (마 18:1-6)
3/20(금) 마태복음(171) 작은 척하는 큰 인물(2) (마 18:1-6)
3/21(토) 마태복음(172) 영혼을 잘 지키는 길(1) (마 18:7-14)
3/23(월) 마태복음(173) 영혼을 잘 지키는 길(2) (마 18:7-14)
3/24(화) 마태복음(174)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1) (마 18:15-20)
3/25(수) 마태복음(175)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2) (마 18:15-20)
3/26(목) 마태복음(176) 용서하는 삶을 선택하라(1) (마 18:21-35)
3/27(금) 마태복음(177) 용서하는 삶을 선택하라(2) (마 18:21-35)
3/28(토) 마태복음(178) 최상의 나를 추구하라 (마 19:1-12)
3/30(월) 마태복음(179) 범사에 감사하는 길(1) (마 19:13-15)
3/31(화) 마태복음(180) 범사에 감사하는 길(2) (마 19:13-15)
마중물 : 언제나 바라볼 하나님
<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
예전에 개봉된 <내 머리 속의 지우개>라는 영화가 있었다. 사랑을 믿지 않던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사랑을 배우고 결국 결혼한다. 그러나 결혼 후의 행복이 아내의 알츠하이머병으로 깨진다. 남편은 아내의 기억을 회복시키려고 힘쓰지만 불치병인 치매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아내를 요양원으로 보내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난다.
사랑의 추억이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기억을 잘 간직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사랑을 잃는 것만큼 무서운 것은 사랑했던 기억을 잃는 것이다. 가슴 아픈 기억은 잘 내버리고 사랑했던 기억은 잘 간직하라. 사랑과 은혜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 지우개가 내게 생기지 않도록 나를 잘 관리하려면 사랑과 은혜를 의식적으로 더욱 많이 기억해야 한다. 은혜에 대한 기억은 은혜를 키우고 상처에 대한 기억은 상처를 키운다.
예전에 한 사람이 필자에게 전화했다. “목사님, 최근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아요.” 그가 현기증으로 갑자기 쓰러질 때 방바닥에 머리가 부딪친 후 머리에 혹이 생기면서 며칠 전에 이사한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머리의 해마가 다치면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저장시키는 회로가 막혀서 최근 기억부터 잃는다. 그는 1시간 전에 전화한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또 전화해서 자신이 그런 전화를 했느냐고 반문했다.
필자가 너무 마음이 아파서 간절히 그의 기억력 회복을 위해 기도하자 하나님이 깊은 평안을 주셨다. 그래서 그가 밤늦게 네 번째로 전화했을 때 그에게 하나님의 평강을 전하며 말했다. “사람이 기억을 잃으면 최근 것부터 잃으니까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머리 부은 것이 가라앉으면 점차 기억이 회복될 겁니다.” 그날 밤 하나님이 그의 머리의 혹을 급속히 가라앉게 하시고 기적적으로 기억력을 회복시켜 주셨다.
사람은 너무나 연약한 존재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 한다. 만약 내게 하나님의 은혜가 없고 말씀과 기도가 없으면 어떻게 살겠는가? 사람은 순식간에 불행해질 수 있다. 남들 앞에서 친밀한 애정을 과시하던 부부가 순식간에 도끼눈을 하고 서로 잡아먹으려는 경우도 많다. 사람의 사랑은 변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고 나는 여전히 부족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신다. 그 사실만 알아도 승리와 행복의 최대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사람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님 안에 있는 길과 하나님 밖에 있는 길이다. 때로 하나님 밖에 있는 길이 형통한 길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밖에서의 형통을 추구하지 말라. 절망 중에도 희망을 품고 하나님 안에서 겸손히 살아야 참된 복을 얻는다. 하나님 안에서 얻는 참된 희망은 마음의 고통을 지우고 열정과 창조성을 견인하는 기관차와 같다. 내일의 희망이 없으면 망망대해와 같은 세상을 헤쳐 나갈 힘이 없지만 내일의 희망이 넘치면 용기와 지혜와 창조성을 가지고 얼마든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국 승리할 수 있다.
< 삶을 귀하게 여기라 >
이성적인 사고는 내일의 희망을 보게 하기보다 현실에 매이게 만들지만 신앙적인 감사는 내일의 희망을 보고 현실을 극복하게 만든다. 현실에 대해 불평하면 운명에 매이지만 현실에 대해 감사하면 운명이 극복된다. 고난의 현장에서도 믿음으로 감사하면 그 현장 곳곳에 뿌려진 복의 씨앗이 보이고 때가 되면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역사가 나타난다. 결국 감사하는 믿음은 복된 삶을 예비하는 최적의 힘이다. 감사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나의 삶과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더 나아가 남의 삶과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배려심도 갖추라.
한 사람이 가족 5명과 함께 지방에 가기 전날에 휘발유값이 비싼 자신의 동네에서 휘발유를 넣고 출발할까 아니면 다음날에 약 만 원이 절약되는 고속도로에서 휘발유를 넣을까 하는 문제로 고민하다 출발 전날에 혼자 있을 때 휘발유를 미리 넣었다. 고속도로에서 휘발유를 넣는 시간 10분을 절약하면 가족 5명이 각각 10분을 절약하면서 전체로는 50분을 절약하는 셈이 되고 그 50분이 만 원보다 더 가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남의 시간을 배려하고 남의 삶을 귀하게 여기라. 작은 문제에서도 남을 배려하는 성도다움을 나타내는 사람을 통해 사회도 조금씩 환해질 것이다. 남을 배려하는 삶이 나를 구원으로 이끌지 못해도 남을 구원으로 이끌 수 있기에 성도다운 삶은 세상적인 도덕과 윤리 이상으로 중요하다. 그런 성도다운 삶을 도덕과 윤리 차원으로 격하시키는 이단 교주의 모습은 나의 구원에만 집착하고 남의 구원과 사회 구원은 외면하는 잘못된 모습이다.
절망 중에도 내일의 희망을 가지고 하나님께 불평하기보다 감사하고 하나님이 주신 삶과 날을 소중히 여기면서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삶을 실천하면 최종적인 의미에서 결코 패배하는 일이 없을 것이고 2보 후퇴하면 3보 전진하는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인생은 올라가고 내려가는 삶의 연속이다. 그런 인생에서 하나님 안에 있으면서 하나님만 바라보면 하나님이 언젠가 반드시 높이 세워 주시고 어디서든지 끝까지 남은 자가 되게 하실 것이다.
< 언제나 바라볼 하나님 >
왜 사람들이 불안에 빠지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 밖에서의 가치 없는 자존심은 버리고 하나님 안에서의 가치 있는 자존감을 가지라. 적당한 자존심은 품위 유지에 필요하지만 지나친 자존심은 나를 소외시키고 결국 불행을 낳는다. 자존심을 적절히 내세워서 남이 나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면 유머로 넘기고 나를 지혜롭게 돌아보면서 더욱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라.
일제 강점기 때 주기철 목사가 일경에 체포되자 사모가 말했다. “목사님, 살아서 돌아올 생각을 마세요.” 언뜻 생각하면 남편 입장에서 매우 섭섭한 말로 들리겠지만 깊이 생각하면 “여보! 저도 마음을 단단히 먹었어요. 가족은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용기 있게 나아가세요.”라는 매우 힘이 되는 말이다. 신실한 사람도 때로는 가족 때문에 믿음의 길에서 후퇴할 때가 있는데 그런 상황이 없도록 기도하라.
한 젊은 목사가 가끔 밤에 기도하러 교회에 가면 어린 자녀가 말했다. “아빠, 교회에 가지 말고 저와 함께 있어 주세요.” 그 말을 들으면 아빠의 마음이 약해졌다. 반면에 어떤 때는 어린 자녀가 대견하게 말했다. “아빠, 제가 아빠를 바라보는 것처럼 아빠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지요? 저는 혼자 책을 보다가 잘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면 철없는 자녀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는지 신기하면서 큰 힘이 되었다.
하나님만 바라보면 얼마든지 절망의 밤을 희망의 새벽으로 만들 수 있다. 하나님 안에서는 절망이 없다. 하나님과 멀어지는 삶을 합리화하거나 정당화하지 말라. 왜 살아 계신 하나님이 내게 문제를 허락하시는가?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지 말고 하나님께로 돌아서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외면하면 사람들로부터 소외되면서 복도 멀어지지만 하나님만 바라보면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이 반사된 나를 바라보면서 복도 찾아온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면 영적인 시력이 높아져 내일의 희망이 보이고 안 보이던 길이 보인다. 하나님을 외면하면 하나님이 안 보이면서 희망을 잃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보이면서 희망을 찾는다. 결국 사람에게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기도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기도는 나를 바로 보게 만들어서 내가 어떤 존재이고 내가 어디로 가는지를 알려 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기도를 체질화시켜서 절망적인 밤을 기도하는 밤으로 만드는 데 능숙해지라.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바로 생각하라. ‘이 일에는 어떤 하나님의 뜻이 있을까? 하나님은 지금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시는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어떤 일로 고민이 되어 잠이 잘 오지 않으면 그 고민하는 밤을 기도하는 밤으로 만들라. 기도하는 밤을 지나서 맞이하는 새벽은 찬란한 새벽이 된다. 기도가 없이 지새는 밤은 새벽의 삶을 늦추지만 기도하면서 보내는 밤은 새벽의 삶을 앞당긴다. 이제까지의 <월간새벽기도> 사역도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공급하시고 채워 주시는 은혜로 밤길을 헤쳐 나온 사역이었다.
하나님만 바라보며 기도의 무릎을 꿇는 일에 익숙해지면 세상에 무릎 꿇을 일이 없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기도하면 조만간 눈부신 현실과 눈부신 미래가 보인다. 결국 언제나 바라볼 하나님이 승리와 행복의 제일 원천이다. 사탄의 제일 전략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라. 하나님을 외면하면 대낮에도 밤중의 삶을 살게 되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 밤중에도 대낮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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