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3장 25-30절
25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그들을 저주하지도 말고 축복하지도 말라 26 발람이 발락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은 내가 그대로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지 아니하더이까 27 발락이 발람에게 또 이르되 오라 내가 너를 다른 곳으로 인도하리니 네가 거기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기를 하나님이 혹시 기뻐하시리라 하고 28 발락이 발람을 인도하여 광야가 내려다 보이는 브올 산 꼭대기에 이르니 29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여기 일곱 제단을 쌓고 거기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하소서 30 발락이 발람의 말대로 행하여 각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리니라
불신적인 긍정주의를 멀리하라 (민수기 23장 25-30절)
< 점술과 복술을 멀리하라 >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초청한 발람이 칭송을 넘어 축복까지 하자 발락이 짜증 섞인 어투로 말했다. “그들을 저주하지도 말고 축복하지도 말라(25절).” 발람이 대답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은 내가 그대로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인간적인 계획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바꿀 수 없다는 뜻이다.
성도가 가장 멀리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점이다. 하나님이 펼쳐 가실 미래를 사람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점은 맞지 않지만 성도에게는 더 맞지 않다. 자신의 운명 예측을 점쟁이에게 맡기면서 심리 조작으로 판단력을 잃게 만드는 가스라이팅에 당하지 말라. 용하다는 점쟁이일수록 점이 틀렸을 때 틀린 것에 대해 변명하는 임기응변이 능하다.
점치는 일은 거짓이 체질화되어야 하기에 아무나 하지 못하고 지극히 뻔뻔하거나 탐욕에 눈먼 사람만 할 수 있다. 그런 거짓 점의 속성을 알고 대비해야 하는데 한번 점에 의지하면 계속 의지하게 되는 것이 문제다. 용하다는 무당에게 한번 점을 쳤다가 어쩌다 맞아서 믿게 되는 상황이 생기면 매번 중요한 결정 때마다 묻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디지 못하게 된다. 그러다가 점차 점에 중독되는 것이다.
교인이 예언과 위로를 받으려고 목사를 찾으면 목사는 그가 의존적인 헛된 믿음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자신을 찾지 말고 하나님을 찾으라고 한다. 반면에 돈과 영혼을 소유하려는 욕심이 있는 교주는 자신의 영성과 은사를 과시하며 자신을 더 찾고 의지하게 만든다. 아무리 위대하게 보여도 사람을 의지하는 순간 망하는 길로 들어선다. 선한 목자가 가리키는 하나님과 성경을 보고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기도해야 반전의 역사가 나타난다.
< 불신적인 긍정주의를 멀리하라 >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도구로 잠시 쓰임 받던 발람이 이스라엘을 축복했어도 발락은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의 집념을 포기하지 않고 세 번째로 또 저주하도록 발람을 인도해 광야가 내려다 보이는 브올 산 꼭대기에 이르자 발람이 이전처럼 말했다. “나를 위하여 여기 일곱 제단을 쌓고 거기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하소서(29절).” 그러자 발락이 그대로 행했다.
발락은 자신의 끈질긴 노력과 정성으로 신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 헛된 불굴의 신념을 가졌다. 진리와 진실을 고집하는 것은 독실이지만 잘못된 생각과 태도를 고집하는 것은 독선이다. 자기 뜻을 고집스럽게 내세워 기도하는 것은 실패와 패망을 재촉한다. 발락의 모습은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라는 불신적인 신념과 불신적인 긍정주의다. 신념과 신앙은 다르다.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라는 신념보다 “하나님 안에서 하면 된다. 하나님 안에서 할 수 있다.”라는 신앙을 가지라.
한때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많은 사람이 찬란한 꿈을 가지고 경제적인 성공을 이뤘다. 그러나 ‘하면 된다’는 사고방식만 무조건 강조해서 편법과 불공정이 판치고 생명 가치가 실종되고 수많은 부작용 때문에 상처 입는 사람이 많이 생겼다. 부정직하게 성공해도 ‘하면 된다’는 것의 표상으로 칭송받으면 편법을 동원해도 된다는 가치관이 사람들의 가치 체계에 알게 모르게 스며들 수 있다.
하면 된다는 사상은 ‘넓은 문의 사상’이다. 넓은 문으로 쉽게 들어가서 얻은 성과는 수명이 짧아 부작용이 커지면서 결국 부작용이 성과를 압도해 파멸에 이른다. 그처럼 넓은 문을 통과해 들어선 길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좁아지고 마침내 막다른 골목을 만나 절망에 빠지게 만든다. 반면에 어려워도 좁은 문을 통과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넓어지고 계속 희생과 헌신으로 그 길을 가면 마침내 길이 다 사라지는 대도무문의 경지에 이를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