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6-42장 / 디도서 1-3장
10/1(목) 욥기(85) 하나님께 나를 맡기라 (욥 36:17-33)
10/2(금) 욥기(86) 하나님의 마음을 얻는 길(1) (욥 37:1-13)
10/3(토) 욥기(87) 하나님의 마음을 얻는 길(2) (욥 37:1-13)
10/5(월) 욥기(88) 하나님과 깊이 만나라(1) (욥 37:14-24)
10/6(화) 욥기(89) 하나님과 깊이 만나라(2) (욥 37:14-24)
10/7(수) 욥기(90) 항상 기뻐하며 살라(1) (욥 38:1-7)
10/8(목) 욥기(91) 항상 기뻐하며 살라(2) (욥 38:1-7)
10/9(금) 욥기(92) 자연 만물이 주는 교훈(1) (욥 38:8-24)
10/10(토) 욥기(93) 자연 만물이 주는 교훈(2) (욥 38:8-24)
10/12(월) 욥기(94) 자연을 즐기라(1) (욥 38:25-41)
10/13(화) 욥기(95) 자연을 즐기라(2) (욥 38:25-41)
10/14(수) 욥기(96) 동물을 통해 얻는 교훈 (욥 39:1-30)
10/15(목) 욥기(97)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하라 (욥 40:1-24)
10/16(금) 욥기(98)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라 (욥 41:1-34)
10/17(토) 욥기(99)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1) (욥 42:1-9)
10/19(월) 욥기(10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2) (욥 42:1-9)
10/20(화) 욥기(101) 갑절의 복을 받는 길(1) (욥 42:10-17)
10/21(수) 욥기(102) 갑절의 복을 받는 길(2) (욥 42:10-17)
10/22(목) 디도서(1) 복의 씨를 뿌리라(1) (딛 1:1-4)
10/23(금) 디도서(2) 복의 씨를 뿌리라(2) (딛 1:1-4)
10/24(토) 디도서(3) 좋은 교회 리더가 되라(1) (딛 1:5-16)
10/26(월) 디도서(4) 좋은 교회 리더가 되라(2) (딛 1:5-16)
10/27(화) 디도서(5) 복된 가정을 만드는 요소(1) (딛 2:1-8)
10/28(수) 디도서(6) 복된 가정을 만드는 요소(2) (딛 2:1-8)
10/29(목) 디도서(7) 하나님의 종답게 사는 길 (딛 2:9-15)
10/30(금) 디도서(8) 복된 성도가 되는 길 (딛 3:1-11)
10/31(토) 디도서(9) 열매 맺는 자가 되는 길(1) (딛 3:12-15)
마중물 : 예수님을 깊이 만나라
< 예수님밖에 없다 >
사람의 힘이나 세상 것으로는 세상을 이길 수 없다. 세상 것은 버리더라도 예수님은 결코 버리지 말라.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은혜인 복음으로만 세상을 이길 수 있다. 복음은 예수님이 사람의 죄를 대속해 십자가에 달리고 부활해서 세상을 이기심으로써 사람에게도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기쁜 소식이다.
사람에게 가장 귀한 삶은 예수님을 믿는 삶이다. 선한 사업을 만 년간 하고 새벽기도를 천 년간 해도 그것만으로는 구원받지 못한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가장 관대하셔서 참된 부요와 풍성한 은혜를 내려 주신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자녀의 친구도 관대하게 대하며 좋은 것을 함께 나누어 주듯이 죄를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님과 함께하는 사람에게는 사랑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신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는 길밖에 없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롬 10:11). 사람들은 수시로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그런 부끄러움을 넉넉히 극복할 수 있다. 예수님은 인생과 가정과 일터의 부끄러움을 막아 주실 것이다. 역설적인 개념으로 사랑과 용서와 헌신이 없는 삶을 부끄러워하는 것도 믿음의 핵심 표식이다.
예수님을 믿는 것보다 귀한 것은 없다.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일이 선하게 결론지어진다. 안타까운 사실은 예수님을 오랫동안 믿은 사람에게도 잘못된 믿음이 많다는 사실이다. 왜 그런가? 처음에 순수한 믿음을 가졌다가 점차 자신의 지식과 능력과 경험과 공로를 의지하기 때문이다. 오직 예수님을 붙잡는 믿음과 처음의 순수한 믿음을 회복시키라.
마태복음 17장을 보면 변화산상에서 예수님이 모세 및 엘리야와 말씀하시는 환상적인 장면을 보고 베드로가 황홀감에 젖어서 말했다. “예수님! 여기 있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면 제가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 초막 셋을 짓겠습니다.” 바로 그때 빛난 구름이 제자들을 덮고 하늘로부터 이런 음성이 들려왔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꿈이나 환상이나 은사나 기적이나 다른 어떤 사람들의 말을 믿지 말고 오직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어야 한다.
< 예수님 안에 있는 복 >
예수님 안에 있으면 구체적으로 어떤 복이 주어지는가? 첫째, 나의 시각이 바뀐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으로 인해 삶에 자신감이 생긴다. 또한 나 이외의 존재를 바라보는 시각도 바뀐다. 내게 미운 행동을 한 사람이나 하찮은 사람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로 생각하면서 긍휼히 여기게 되고, 자연도 하나님의 창조물로 보고 자연 안에서 하나님의 오묘한 손길을 느끼며 소중히 여기게 된다.
둘째, 나의 생각이 바뀐다. 하나님이 만물을 있게 하셨다면 나의 모든 형편과 상황도 있게 하셨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만물을 말씀으로 붙들고 계신다면 당연히 나도 말씀으로 붙들어 주실 것이다. 그렇다면 늘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기쁨 가운데 앞날을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보라. 사람들은 대개 기뻐할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하지만 성도는 빌립보서 4장 4절 말씀처럼 예수님 안에서 항상 기뻐해야 한다.
셋째, 나의 삶이 바뀐다. 세상에서 내게 제일 위대한 기적은 나의 삶이 바뀌는 기적이다. 어떤 사람은 놀라운 은사를 받고도 삶이 거의 변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치유의 기적을 경험하고도 삶이 거의 변하지 않는다. 그것을 생각할 때 나의 삶이 바뀌는 기적처럼 위대한 기적은 없다. 내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 내게서 예수님의 빛이 나온다. 그 빛으로 세상에 빛을 비추는 작은 예수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물은 가는 곳마다 자신을 스며들게 해서 많은 생명을 살려 준다. 나도 딱딱하게 쭈뼛거리며 살지 말고 내가 가는 곳마다 누군가가 힘을 얻고 평화롭게 살도록 배려하라. 그런 삶에 능숙해지도록 선교와 구제에 힘써 동참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 사역자의 필요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라. 그렇게 헌신적으로 살면 내가 있는 곳이 어디든지 그곳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성지가 될 것이다.
요새 전반적으로는 살기가 편해졌지만 예전보다 더 어려워진 분야도 많다. 목회와 선교 사역은 많이 어려워졌다. <월간새벽기도> 문서선교 사역 환경도 많이 어려워졌다. 그런 현실에서 하나님은 내게 불모지를 거룩한 땅으로 만들고 절망적인 환경에서 희망을 꽃피우는 사명을 주셨다. 그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 나의 십자가의 헌신을 통해 사랑과 용서와 변화의 기적을 일으키라. 그런 기적을 현실로 만들려면 무엇보다 예수님을 깊이 만나야 한다.
< 예수님을 깊이 만나라 >
문제가 생기고 슬픔과 상처와 고통이 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을 깊이 만나는 일이다. 예수님을 깊이 만나면 문제와 고통을 극복하고 초월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왜 사람들이 문제와 고통을 쉽게 떨치지 못하는가? 그것이 생기는 이유를 너무 찾으려는 과거지향적인 태도 때문이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겼을까?’라는 이성적인 분석에 너무 치우치면 감정 관리가 약해지면서 외적인 고통이 내적인 고통으로 증폭된다.
문제를 너무 깊이 생각하면 문제에 중독되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문제를 성찰은 하되 하나님이 그 문제도 관리하심을 믿으라. 즉 성찰한 후에 믿으라. 성찰은 뿌리와 같고 믿음은 날개와 같다. 성찰의 뿌리를 깊게 내리면서 믿음의 날개로 높이 날아오르라. 현실의 바닥을 딛는 성찰의 발도 필요하지만 이상의 하늘로 뻗는 믿음의 손도 필요하다. 성찰을 통해 나의 한계를 자인하면서 믿음을 통해 나의 이상을 현실화시키라. 즉 성찰과 믿음을 앞세워 문제를 나를 제거하는 위기가 아닌 나를 제련하는 기회로 만들라.
생각과 분석과 해석에만 너무 몰두하지 말라. 문제와 고통에는 나를 더 선하게 만들려는 하나님의 신비한 뜻이 깃들어 있음을 믿으라. 만물에 깃든 신비의 극소수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신비한 종합적인 뜻을 어떻게 잘 알겠는가?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겠다면서 불평조의 의문을 표하는 것도 복된 태도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와 고통을 이겨내는 것이다. 그러려면 예수님을 깊이 만나야 한다. 예수님과 함께라면 고통이 있어도 좋다고 생각할 때 신기하게 문제와 고통이 사라진다.
문제와 고통이 있어도 하나님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흔들리지 말라. 하나님은 성공과 문제 해결을 주어서 사랑하고 감사하는 신자보다 이해할 수 없는 십자가를 지면서도 사랑하고 감사하는 성도를 훨씬 귀하게 여기신다. 고통과 슬픔에 대항해서 싸우지 말고 그때 시선을 돌려 예수님을 바라보면 고통이 금방 떠나지 않아도 마음이 달라지고 슬픔을 이길 힘을 얻고 고난 중에도 찬송하는 기적을 체험할 것이다.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는가? 나의 죄 때문이다.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간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과학의 발달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과학의 발달은 더 큰 해악을 낳을 수 있다. 복음은 물질과 건강의 복도 약속하지만 예수님이 오신 주목적은 그런 복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죄 문제의 처리다. 결국 온전히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킬 분은 예수님밖에 없다.
지금 예수님이 이 땅에 없는데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는가? 그 일을 예수님은 성령 충만한 성도에게 맡기셨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 예수님은 내가 성령을 받고 땅 끝까지 예수님의 증인이 되길 원하신다. 세상의 운명이 내게 달려 있다. 나라의 운명도 정치가나 과학자나 철학자에게 달려 있지 않고 내게 달려 있고 교회에 달려 있다. 문제는 교회가 그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해서 이단 교회의 모습이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의 본모습으로 비치고 오해되는 것이다.
요새 왜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세상의 짐처럼 취급되는가? 내가 예수님의 증인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증인이란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을 전해 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증인이 되려면 예수님을 깊이 만난 체험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을 깊이 만나 죄를 이기고 삶과 가치관이 변하면 나를 통해 가정이 변하고 교회가 변하고 세상이 변할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