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새벽기도와 온라인새벽기도 주필이자 분당샛별교회 담임인 이한규목사는 구원파 이한규목사와는 동명이인입니다. 잘못된 정보 전파가 없도록 주의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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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성육신의 목적 (마태복음 4장 18-25절)
작성자 요삼일육선교회 등록일 2023-12-26
마태복음 4장 18-25절
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2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25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예수님의 성육신의 목적 (마태복음 4장 18-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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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님의 성육신의 목적 >
 
   예수님은 성육신하셔서 십자가를 통해 죄 사함과 천국 길을 열어 주셨다. 결국 예수님의 성육신처럼 복된 역사는 없다. 구체적으로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목적은 무엇인가?
 
  1. 거룩한 어부를 만들도록
 
   어느 날 예수님이 갈릴리 해변을 다니시다가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셨다(18절). 시몬은 히브리어로 ‘듣는다’는 뜻을 가진 베드로의 본명으로서 ‘갈대’란 뜻도 있다. 잘 듣는 것은 좋지만 너무 잘 들으면 갈대 인생이 된다. 예수님은 시몬에게 ‘반석, 바위’란 뜻을 가진 헬라어로 베드로, 아람어로 게바란 이름을 붙여 주셨다. 예수님 안에서 갈대 인생이 반석 인생이 된다는 암시다.
 
   당시 예수님은 열심히 일하는 베드로와 안드레를 보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19절).” 왜 예수님이 성육신하셨는가? 십자가의 복음으로 영혼을 구원하고 구원받은 영혼이 복음의 그물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교회의 핵심 존재 목적은 성도를 구원해서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드는 것이다. 성도의 핵심 사명도 복음 전파를 위한 인물이 되고 인물을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은 복음 전파를 위해 돈이나 권력이나 프로그램을 앞세우지 않고 성전 건축도 앞세우지 않으셨다. 때가 되어 자연스럽게 성전 건축이 순리대로 이뤄지면 복된 것이지만 인간적인 성장 목적과 과시를 위한 무리한 성전 건축은 복된 것이 아니다. 건물보다 인물이 중요하다. 즉 건물을 세우는 것보다 인물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은 부족한 사람을 불러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려고 성육신하셨다.
 
  2. 버림을 통해 더 얻도록
 
   예수님이 부르시자 베드로와 안드레는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고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은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20-22절). 복음 사명을 위해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라는 뜻이다. 그처럼 내가 가진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면 내 손에 아무 것도 남지 않고 내 주위에 어떤 사람도 남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예수님을 위해 과감히 끊고 버리면 더 많이 얻는다.
 
   <월새기(월간새벽기도)> 사역을 위해 발행 초기부터 매년 3번의 특별헌금을 하는 권사가 있다. 4월에는 남편과의 결혼 기념 헌금, 8월에는 자신의 생일 헌금, 12월에는 남편 기일 헌금을 매년 빠짐없이 했다. 그 헌금을 접할 때마다 소천한 남편에 대해 그분이 가진 애틋한 마음이 늘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며칠 전에 변함없이 남편 기일 헌금을 하는 그분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이런 감동을 주셨다. “그 권사에게 어떻게 남편이 아내의 마음을 얻었는지 물어보고 너도 그 남편처럼 해 봐라.”
 
   그때 그 질문이 그분에게 불편한 질문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충분히 기도한 후 전화했다. 그리고 감사와 안부 인사를 전한 후 물었다. “남편께서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어도 여전히 애정이 깊으신데 남편께서 어떻게 권사님의 마음을 얻으셨나요? 남편의 어떤 점이 제일 좋으셨나요? 제가 몇 년 전 60세가 되었을 때 아내를 최대한 마음 편하게 해 주며 살겠다고 결심했는데 아내 마음을 얻는 비결을 배워 따라해 보고 싶네요.”
 
   그 권사가 말했다. “남편이 좋은 점이 많았는데 특히 돈을 많이 벌어 주면서도 어디에 썼는지 전혀 터치하지 않아서 제일 좋았어요. 그래서 남편이 주는 돈으로 개척교회들을 많이 도울 수 있었어요.” 아내가 교회와 선교를 위해 주는 기쁨과 보람을 가지도록 재정적인 뒷받침을 넉넉히 하면서도 전혀 생색내지 않은 것이 아내의 마음을 사로잡은 핵심 요소였다. 그 남편은 버림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얻은 셈이다.
 
   그 권사는 남편이 소천한 후에는 옛날처럼 많은 곳을 후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월새기> 사역은 <월새기> 한 권에 천 원을 받고 교정기관에 무상으로 5천 권 이상 보내는 것이 너무 힘들어 보인다면서 꾸준히 특별헌금을 하셨다. 남에게 꾸준히 책임적으로 후원하고도 마음이 높아지지 않고 생색을 내지 않으면 예수님의 성육신의 향기가 나타나고 버림을 통해 더 얻는 역사를 체험할 것이다.
 
  3. 천국 역사가 확장되도록
 
   예수님은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면서 곳곳의 유대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다(23절). 그처럼 세상에서 천국 확장에 힘쓰라.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러나 나의 고통에만 매달리지 말고 세상의 고통에도 눈을 돌리라. 좋은 머리보다 좋은 마음이 귀하고 좋은 마음보다 좋은 손길이 귀하고 좋은 손길보다 좋은 발길이 귀하다. 즉 생각보다 관심이 중요하고 관심보다 실행이 중요하고 실행보다 동행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내가 너처럼 되려는 성육신의 삶과 내가 너와 함께하려는 동행의 삶을 통해 천국 역사가 확장된다.
 
   세상에 실망한 사람은 부조리하고 불의한 세상에서 성도답게 사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더 나아가 대 재해, 대 참사, 대 고난을 직접 겪으면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진다. 그런 의문은 자연 만물과 삶의 수많은 신비를 생각하고 내가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를 깨달으면 사라진다.
 
   의문과 함께 살아가는 법도 배우라. 의문을 푼 사람이 더 많이 아는 것은 아니다. 의문을 품고도 더 많이 알 수 있다. 많이 안다는 것이 진짜 많이 아는 것은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 남보다 좀 더 알게 되었다.”라고 했다. 의문에 너무 사로잡혀 살지 말라. 한 가지 의문을 풀었다고 모든 것을 알게 된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무지한 것이다. 삶의 의문들을 내려놓고 너무 많이 말한 것을 자책하며 조용하고 은밀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할 때 천국 확장의 역사가 멋지게 펼쳐질 것이다.
 
  4. 회복의 은혜를 입도록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23절). 영혼의 병과 정신의 병과 육체의 병까지 다 고쳐 주셨다는 뜻이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치유를 매우 중시한다. 문제는 가짜 치유에 미혹되어 영혼과 정신과 육체가 더 병드는 것이다. 가짜 치유를 행하는 교주에게 미혹되는 것처럼 저주스러운 일은 없다.
   
   대중은 맹목적으로 비상식인 것에 열광하는 경향이 있다. 예수님께 열광했던 대중이 1주일도 되지 않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다. 그런 대중성에 사로잡히면 인생길을 잃기 쉽다. 거짓 교주들은 대중성을 이용해 영적 교만에 빠진 외로운 영혼을 사로잡아 더 병들게 만든다. 그처럼 자신의 영성 과시를 위해 치유를 가장하는 병에서 치유되고 회복되게 하는 것은 현대 교회의 핵심 과제다. 하나님의 치유는 다양한 방식으로 펼쳐진다.
 
   한 남편이 7년간의 루게릭병 끝에 죽었지만 그 과정에도 치유는 있었다. 아내는 남편을 지극한 사랑으로 보살폈고 교인들도 기도하면서 사랑과 관심과 격려를 보내 주었다. 그런 사랑을 받아 그 부부는 외롭지 않았고 자신들이 여전히 사랑 받는 존재임을 깨달으면서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도 남편이 죽었지만 아내는 남편이 천국에서 온전히 치유되어 더 나은 삶을 누린다고 확신하면서 이 땅에서 살아갈 희망이 넘치게 되었다. 결국 죽음 중에도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있었던 셈이다.
 
   하나님의 치유는 내가 원하는 단편적인 치유 이상으로 펼쳐진다. 심지어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도 치유의 은혜가 내포되어 있다. 왜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일찍 데리고 가셨는지는 천국에 가 봐야 그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 것이다. 그처럼 하나님 안에서 죽는 것도 치유라는 믿음을 가지고 “죽으면 죽으리라! 망하면 망하리라!” 하고 나서면 이 땅에서의 전인적인 치유는 더욱 빨라진다. 그런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주시려고 예수님은 성육신하셨다.
 
  < 치유를 선교로 승화시키라 >
 
   예수님이 이 땅에서 종종 기적적인 치유를 베푸신 것은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현존의 증표였다. 그런 치유로 인해 예수님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지면서 사람들이 데려온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 병자들을 고치시자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다(24-25절).
 
   데가볼리는 헬라어 데카(10)와 폴리스(도시)의 합성어로 10개의 헬라 도시가 연맹체를 이룬 지역이다. 그곳까지 예수님의 소문이 퍼져서 헬라인들도 치유의 은혜를 입고 예수님을 따른 장면은 치유 사역이 이방인 선교에 매우 효과적임을 교훈한다. 그러나 치유를 통해 모인 무리에게 계속 치유 수준의 믿음에만 머물게 하면 점차 무속주의, 신비주의, 기복주의에 빠진다. 치유는 온전한 회복과 선교로 승화되어야 한다.
 
   치유의 은혜를 입은 후에는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천국 성도답게 나눔과 섬김을 통해 이 땅에서 천국 확장 역사를 이루도록 치유를 선교로 승화시키라. 늘 예수님의 성육신의 목적을 따라 거룩한 어부가 되고 버림으로 더 얻는 체험을 하고 천국 확장에 일조하면서 나의 회복을 통해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전 지구촌의 회복을 선도함으로 성육신과 성탄절의 의미를 이 땅에서 멋지게 구현해 내는 복된 심령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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