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6편 9-13절
9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 10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11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12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 13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께 나아가라 (시편 56편 9-13절)
< 자신을 드리라 >
왜 하나님은 다윗을 환난에서 건져 주셨는가? 하나님 앞에서 빛 된 삶을 살라는 뜻이었다. 왜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는가? 헌신하며 살라는 하나님의 뜻이다. 자기 극복의 가장 위대한 길은 스스로 자신을 극복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것이다. 헌신이 빠진 자기 극복은 니체의 초인 사상처럼 된다. 참된 신앙은 ‘자기 극복’ 이전에 ‘자기 헌신’에 좌우된다. 자신을 드릴 때 자신을 극복할 수 있다.
왜 선교와 나눔이 중요한가? 남을 돕는 것이 나를 돕는 길이고 남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눔은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선교 사역의 필요를 채우려고 희생하면 얼마나 행복해지는가? 때로는 선교 사역을 위해 희생해야 할 것이 크면 참여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작은 정성도 중요다.
선교 사역에 동참하는 얘기는 자신의 호주머니를 비우는 일과 관련되기에 듣기에 부담스럽다. 그래도 그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 복이다. 사람이 자신의 것을 거룩한 일에 드릴 때처럼 행복해질 때는 없다. 결국 헌신은 자기 극복을 위한 최선의 길이다. ‘헌신이 없는 자기 극복’은 일종의 기복주의 사상이다.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이유는 자신을 높이는 것을 자기 극복의 길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목사가 50명 교회를 100명 교회로 만들고 더 나아가 1000명 교회로 만들면 성취감은 있어도 그것이 진정한 자기 극복의 길은 아니다. 사업을 키우고 아파트 평수를 늘리는 것도 자기 극복의 길이 아니다. 큰 꿈과 비전을 가지고 나아가면서도 현재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자기를 드릴 줄 아는 것이 자기를 극복하는 길이다.
< 하나님께 나아가라 >
가끔 자기 모습을 보고 실망할 때가 있다. 자기 수양을 통해 감정과 욕망을 누르고 사는 것을 신자 됨의 표시로 여기면 잠깐의 성취감은 있어도 한번 감정과 욕망이 폭발하면 자신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무엇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보다 시시때때로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때로 단점이 노출되고 수치심이 클 때도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면 그때가 오히려 믿음이 성숙해지는 기회가 된다. 또한 그때 사람들의 시선에 몰입했던 자신이 주님께 더 몰입함으로써 넉넉한 마음을 가지게 되고 등 뒤에서 힘을 주시는 주님을 의지해 주님만 바라보고 사명을 향해 달려갈 수 있게 된다. 그처럼 자기 뜻이 사라지고 주님 뜻이 부각되어 세상과 자신은 사라지고 구속한 주님만 보이게 될 때 그 영혼은 무적의 영혼이 된다.
시선 공포증이 매우 심한 한 처녀가 선을 보기 전에 한 목사를 찾아가 그 문제로 상담했다. 목사는 그녀에게 매일 아침과 저녁에 3분씩 거울 앞에서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라고 했다. 자기 얼굴은 시선을 돌리지 않고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 말대로 훈련하자 남의 얼굴을 보는 일이 비교적 편해졌다. 사람이 거울로 자기를 바라봐도 그렇게 변하는데 영적인 눈을 뜨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얼마나 담대하게 되겠는가?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사람은 불완전하지만 하나님은 완전하다. 사람은 넘어지고 깨어지고 실망하고 낙심에 빠지는 연약한 존재다. 그처럼 완전한 삶을 살 수는 없어도 완전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는 있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완벽함은 주시지 않았지만 완벽하신 하나님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은 주셨다. 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품에 자신을 드리는 존재가 가장 복된 존재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