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3편 1-2절
1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2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언제나 찬양하라 (시편 113편 1-2절)
< 반드시 찬양하라 >
감사와 찬양은 사실상 유사한 개념이다. 감사하고 찬양하면 축복과 행복이 넘치게 된다. 감사와 찬양의 분량이 축복과 행복의 분량이다. 찬양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시인은 찬양하라고 두 번이나 강조하면서 두 번째에는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고 했다(1절). 그 고백은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는 삶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고백이다.
반드시 찬양하라는 말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과 거의 같다.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꽃다발과 같다. 복된 성도가 되려면 하나님으로부터 점수를 많이 따기 위해 거창하게 어떤 일을 성취해야 되는 줄 안다. 그러나 부부 관계에서 거창한 선물보다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더 배우자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 찬양의 꽃다발을 한 아름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무엇보다 더 기쁘시게 할 수 있다.
사람도 수고를 알아주고 칭찬해 주면 행복이 넘치게 된다. 칭찬은 큰 힘을 얻게 하고 삶의 에너지가 생기게 한다. 칭찬이 넘치는 관계가 건강한 관계다. 그때의 건강이 찬란한 미래를 약속하고 예비한다. 칭찬은 능력이다. 그러나 찬양은 더욱 큰 능력이다. 하나님이 무엇보다 좋아하시는 것이 ‘찬양’이다. 찬양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상의 것이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찬양 중에 거하신다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찬양이 넘치는 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넘치고 찬양할 때 능력과 기적이 넘치게 나타난다.
시편의 핵심 주제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란 것이다. 참된 시인(詩人)은 하나님을 시인(是認)하는 사람이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을 시인하는 시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을 찬양하면 자기를 잊게 되면서 상처와 시름도 지워지고 백지 같은 마음이 된다. 그 마음에 하나님의 기운이 가득 차면서 새로운 삶의 용기와 희망이 생긴다. 결국 찬양처럼 복된 것은 없다. 성도에게 찬양은 기쁨의 원천임과 동시에 열매다.
< 언제나 찬양하라 >
시인은 고백했다.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2절).” 이 고백은 언제나 찬송하라는 고백이다. 살다 보면 찬송하기 힘든 상황이 생긴다. 그때도 힘써 찬송하라. 앞으로 천국에 가면 영원히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다. 찬송은 천국 삶의 가장 뚜렷한 예표다. 그러나 천국 가기 전에도 늘 찬송함으로 이 땅의 삶을 천국 삶으로 만들어가라.
욥이 시련을 통해 모든 것을 잃고도 본 시인과 유사한 고백을 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극심한 시련 중의 찬송은 상황 반전의 역사를 일으키는 핵심 키(key)다.
왜 다윗이 숱한 시련을 극복하고 마침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는가? 다윗은 성경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물 중 한 사람이고 유대인들은 그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여긴다. 그런 위대한 왕이 되기까지는 엄청난 광야의 시련이 있었다. 그 광야 생활을 비참한 운명이 아닌 하나님의 선한 섭리로 받아들임으로 오히려 그때 가장 많은 시편을 남겼다. 또한 왕이 된 후에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배반의 시련을 당했을 때도 많은 시편을 남겼다. 역경이 심할수록 그의 입술에 노래가 넘친 것이다.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편 34편 8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노래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인간적으로 참기 힘든 대 망신을 당하고도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했다. 다윗 같은 인물도 고난을 당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가? 다윗처럼 역경을 찬양으로 승화시킬 때 하나님은 급히 상황 반전의 역사를 이뤄 주실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