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6편 4-6절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희망의 씨를 뿌리라 (시편 126편 4-6절)
< 희망을 가지고 기도하라 >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시인은 크게 기뻐하다가 곧 이어 분위기를 바꿔 비장한 기도를 했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4절).” 그때 귀환한 백성들에게는 큰 기도 제목이 있었다. 어떤 기도 제목인가? 돌아와 보니까 예루살렘이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었다. 성전도 폐허가 되었고 눈앞에 기다리는 것은 추위와 굶주림뿐이었다.
또한 아직도 바벨론에서 가족의 일부가 오지 못한 이산가족도 꽤 많았다. 게다가 믿음과 정체성의 회복을 위해 성전 건축을 하려는데 그곳에 이주해 살던 이방인들이 방해했다. 기쁜 마음으로 귀환했지만 기쁨은 잠깐이고 고통스런 현실이 눈앞에 닥친 것이다. 살다 보면 그런 경험이 얼마나 많은가? 예배를 잘 드리고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으면 그때는 너무 기쁘지만 어려운 현실에 다시 부딪치면 또 낙심이 찾아온다. 그것이 인생이다.
결혼 후 신혼여행을 떠날 때 얼마나 행복한가?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너무 기뻐서 마치 꿈꾸는 것 같다. 그러나 곧 그 가정에도 어려움이 찾아온다. 그처럼 무엇인가 좋은 일을 하려는데 고난과 갈등의 골짜기를 만나면서 인생의 내리막길을 걸어야 할 때가 있다. 그때 실망하지 말라. 내리막길의 낙차 에너지를 잘 이용하고 반동을 잘 이용하면 더 높게 올라갈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라.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면 이렇게 기도하라. “하나님! 저희 자녀들을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주소서.” 사업을 위해서도 이렇게 기도하라. “하나님! 저의 사업을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주소서.” 하나님이 왜 어려움을 있게 하시는가? 낙심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더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게 하기 위함이다. 힘들어도 희망을 가지고 계속 기도하면 조만간 꿈꾸는 것과 같은 축복의 때가 찾아올 것이다.
< 희망의 씨를 뿌리라 >
어려울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눈물로 씨를 뿌리는 것’이다.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에게는 다 그런 눈물이 있었다. 모세는 사랑하는 동족을 위해 “하나님! 저들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다면 제 이름을 하나님의 생명책에서 제하셔도 좋습니다.”라고 눈물로 기도했다. 사도 바울도 사랑하는 민족과 골육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은 저주를 받아 끊어져도 차라리 그것을 원한다고 눈물로 고백했다.
어느 날 부흥사 찰스 피니가 시카고의 거리에서 수많은 행인들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펑펑 울었다. 같이 가던 사람이 물었다. “목사님, 왜 그렇게 우세요?” 피니가 말했다. “영생을 모르고 지옥으로 가는 저 무리들을 보니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네.” 그처럼 영혼을 위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울고 잘못된 길로 가는 한국 교회를 위해서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울 줄 아는 사람이 많이 일어나야 한다.
눈물에 놀라운 치유 능력이 있다. 누가 울면 “울지 마.”라고 하지 말라. 울고 싶으면 울게 놔두라. 예수님도 눈물을 흘리셨다. 영혼의 키는 눈물의 물을 주어야 잘 자란다. 요새 얼마나 눈물이 말랐는가? 눈물을 찾으라. 그러나 감정적인 눈물만 흘리면 자기감정 해소만으로 끝나기에 눈물을 흘리며 동시에 씨를 뿌리라. 축복과 행복은 빈둥거리며 노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눈물을 흘리며 희망의 씨를 뿌리는 사람의 것이다.
상처와 슬픔에 잠겨 할 일을 외면하지 말고 눈물로 씨를 뿌리라. 부지런한 꿀벌은 슬퍼할 틈이 없다. 꿈꾸는 것 같은 복을 원하면 뒷짐만 지고 있지 말고 뒤에서 모함도 하지 말라. 눈물로 씨를 뿌려서 크려고 하지 않고 모함해서 크려는 것은 가장 사탄적인 것이다. 최종적인 기쁨은 눈물과 비례한다. 심은 대로 거둔다. 심은 대로 거두는 원리는 최고의 경영학 원리다. 어려워도 눈물로 희망의 씨를 뿌리면 기쁨으로 추수할 날이 온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