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2장 21-28절
복된 삶을 사는 길 (욥기 22장 21-28절)
1.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과의 화목은 평안을 낳고 복이 임하게 만든다(21절). 하나님과 화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본문 22절을 보라. “청하건대 너는 하나님의 입에서 교훈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는 말이다. 예배 때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기에 말씀을 생생하게 접하는 주일 예배는 삶의 중심축과 같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세상에서 열심히 가정과 사회에 유익이 되도록 힘쓰면서 삶으로 예배를 드리고 주일 하루만은 실제 예배를 통해 성도와 깊이 소통하길 원하신다. 교회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예배다. 예배는 삶에 믿음과 용기와 희망을 불러일으킨다. 사람은 약해도 예배하는 사람은 강하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사랑하면서 배운 십자가의 사랑으로 화평을 이루라. 서로 감싸 주고 섬겨 주고 함께 짐을 나눠지고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움으로써 하나님과의 화목을 가정과 교회와 세상에서의 평화로 나타내라.
2. 하나님께로 돌아가라
하나님께 돌아가면 회복의 은혜를 입고 가정에서 불의를 멀리하게 된다(23절). 바른 믿음 생활은 바른 가정생활을 낳는다는 뜻이다. 가정을 작은 교회로 여기고 믿음과 삶의 근거지로 삼으라. 가정생활과 교회 생활을 함께 잘하라. 교회는 3-4대가 함께 어울리는 큰 가정이다. 교회가 너무 커서 주일에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로 나누어 같은 세대끼리만 모이면 재미는 있어도 가정적인 소속감은 없어서 결국 성인이 되면 교회에서 멀어지기 쉽다. 교회에서는 또래끼리 어울리는 것보다 세대를 초월해서 어울리는 것이 훨씬 복된 관계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기도와 축복과 사랑을 먹고 자라면 교회는 아늑하고 따뜻한 가정처럼 여겨진다. 그런 가정적인 교회를 잃어버린 것이 현대 교회의 아쉬운 점이다. 교회를 영혼의 고향처럼 알고 사모하고 사랑하면서 교회에서 최대한 성도답게 사는 것은 하나님께 돌아간 삶의 핵심 증표다. 하나님께 돌아가 자발적으로 예수님의 멍에를 매라. 예수님의 멍에는 기쁨을 빼앗기보다 오히려 더해 주고 시류에 따라 흔들리는 삶을 막아 주는 거룩한 닻이다.
3. 하나님을 기뻐하라
하나님을 기뻐하며 보화를 티끌로 여기고 오빌의 금을 계곡의 돌로 여기면 하나님이 나의 보화가 되시고 내게 고귀한 은처럼 나타나실 것이다(24-25절).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을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삶으로 발전시키라. 교리적으로 잘못된 것도 이단이지만 하나님과 교회 이름을 내세우면서 먹칠하는 것도 이단이다. 극단적인 주장으로 미움과 증오를 심어 사람을 극단화시켜 자기 교회를 키우면서 전체 한국 교회 이미지를 먹칠해 교회로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멀어지게 만드는 것은 교리적인 이단은 아니라도 실천적인 이단이 된다.
극단적인 주장으로 자기 교회는 만 명으로 만들면서 우리나라 전체 불신자인 4천만 명의 전도를 힘들게 만들면 하나님은 가슴을 치실 것이다. 게르만 기독교를 표방한 나치로 인해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다. 남을 미워하게 만드는 것은 기독교 정신과 가장 반대되는 것이다. 미움을 심는 나치 기독교 신자가 되어 나를 치욕적으로 만들지 말라. 사탄이 미움의 구렁으로 나를 밀어넣을 때 그 구렁에서 잘 빠져나와 사랑과 용서를 실천해야 인생과 가정과 교회와 나라가 복되게 될 것이다.
4. 하나님께 기도하라
성도의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다(27-28절). 책임적인 기도를 드리는 한 사람 때문에 가정과 교회와 나라가 산다. 그런 사람은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제가 지지하지 않는 정치인이 리더로 선택되어도 좋습니다. 나라를 좀 더 화합과 발전으로 이끌고 이웃 나라와도 잘 소통해서 경제를 일으켜 세계로 복음을 전파할 역량을 갖춘 나라가 되도록 화합적으로 잘 이끌 리더를 주소서.” 그렇게 개인감정을 버리고 대의를 앞세워 드리는 기도가 능력 있는 기도다.
또한 응답받는 기도를 위해 꼭 버려야 할 것이 미움이다. 미움을 품은 기도는 능력도 없고 역사도 없다. 원수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라. 어떤 사람은 원수 사랑을 불가능하게 여긴다. 그러나 쉽지는 않아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원수 사랑은 감정적으로 사랑하라는 말씀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수에 대한 개인감정을 버리고 하나님께 원수를 맡기고 원수가 회개하고 복된 길에 들어서도록 기도하는 것도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다. 원수가 복된 길로 들어서도록 기도하면 오히려 내게 복된 길이 펼쳐질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