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3편 1-3절
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차이를 넘어서서 교제하라 (시편 133편 1-3절)
< 차이를 넘어서서 교제하라 >
교회는 ‘큰 가정’이 되고 가정은 ‘작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 교회에서 사랑의 교제가 부족한 것은 무관심, 교제의 가치에 대한 인식 부족, 교만하고 닫힌 마음, 비판적인 성격, 비교의식, 용서하지 않는 마음 등이 원인이다. 자기 생각과 판단과 의사만 고집하면 사랑의 교제는 힘들어진다.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겸손하게 자신을 낮출 때 사랑의 교제가 이뤄진다. 그러므로 교회 일에 힘써 참여하고 성도의 교제에도 적극 참여하라.
교회는 성품과 신분의 차이를 넘어선 교제가 가능한 곳이기에 세상의 어떤 교제보다 교회 내의 교제는 깊어야 한다. 교회에서는 용서와 인내와 이해가 넘치고 질투나 우월감이나 열등감이나 차별이 없어야 한다. 초대 교회 때 말할 줄 아는 도구처럼 여겨졌던 노예를 교회가 소중한 인격체로 존중하자 사람들은 교회를 사회 제도 파괴 세력으로 여기고 박해했지만 나중에 그런 모습이 오히려 더욱 많은 사람을 감동시켜 구원으로 이끌었다.
빌레몬서에 나오는 오네시모는 주인 빌레몬의 집에서 도망친 노예였다. 당시 도망친 노예는 즉시 사형에 처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도망자로 지내던 오네시모가 바울을 만나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나중에 한 지역 교회를 다스리는 감독이 되었다. 오네시모를 그렇게 변화시킨 것은 사랑의 교제였다.
빌레몬서 1장 6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믿음의 교제는 선을 알게 하고 주님을 따르게 만든다. 성도 간의 교제에 세상 요소가 없게 하라. 이익을 노리고 교제하지 말고 계층이나 지역을 따져 교제하지 말라. 사랑과 믿음을 바탕으로 신분과 직업과 빈부를 뛰어넘는 교제를 할 때 행복을 가져다주는 좋은 친구와 멘토를 얻는다.
< 형제가 연합하는 삶의 복 >
시편 133편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삶의 복이 짧게 잘 묘사되어 있다. 본문 1절을 보라.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믿음의 형제들이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꿈과 비전을 도전하는 삶처럼 선하고 아름다운 삶은 없다. 특히 오랜만에 절기 때 순례자들이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서로 믿음을 격려하면서 얼마나 힘이 되었겠는가?
시인은 형제가 연합하고 동거하는 삶의 복을 2가지로 묘사했다. 첫째, 기름부음이 넘치는 복으로 묘사했다(2절). 둘째, 헐몬산 이슬이 내리는 복으로 묘사했다(3절). 성도의 매력은 사람간의 차이를 극복하고 연합해서 어울리는 공존의 삶에 있고 그때 영생의 복, 즉 구원의 복도 나타난다. 최고의 복인 영생을 사랑의 교제가 준다는 말씀은 사랑의 교제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부모가 자녀를 키울 때 언제 가장 마음이 아픈가? 자녀들이 서로 싸울 때다. 하나님이 가장 마음이 아프실 때도 성도들이 서로 싸울 때다. 반면에 서로 연합하고 동거하면 가장 기뻐하신다. 그때 구원의 복을 비롯해 수많은 복이 따른다. 결국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형제가 서로 연합하고 동거하는 삶이다.
성공한 사람에게는 대개 곁에서 사랑과 믿음과 지혜를 공급해 주면서 조언해 주고 격려해 주고 위로해 주고 붙들어 주고 기도해 주는 손길이 있다. 그렇게 깊은 차원에서 도와주는 사람을 멘토라고 한다. 좋은 멘토를 찾아 나서고 누군가의 좋은 멘토가 되어 주라. 인생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말라. 험난한 세상에서 자신을 진정으로 아껴 주며 돌봐 줄 멘토가 함께 해 주면 쉽게 절망하거나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