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장 13-17절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열매 맺는 삶을 살라 (로마서 1장 13-17절)
< 거룩한 불꽃을 점화시키라 >
감리교를 창시한 요한 웨슬레는 50Kg 밖에 되지 않는 왜소한 체구를 가졌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부흥사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영국 최고의 옥스포드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강의도 했다. 그리고 미국 조지아 주로 인디안 원주민 선교를 떠났다. 그때 그에게는 신대륙 선교의 웅대한 비전이 있었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이 처절한 실패를 맛보았다. 그리고 폐결핵까지 걸린 채 패잔병처럼 영국으로 귀향했다.
1738년 5월 24일 웨슬레는 우연히 모라비안 성도들의 밤 집회에 참석했다. 거기서 한 청년이 로마서 1장 17절을 낭독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평소에 잘 알던 말씀이었지만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이 그날따라 그의 가슴을 치며 믿음의 불꽃을 뜨겁게 점화시켰다.
그는 어렸을 때 화재로 타죽기 일보 직전에 살아났기에 ‘타다 남은 숯’이란 별명을 지녔다. 그 숯에 다시 불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그는 투병하면서 자기 묘비에 새길 다음과 같은 기도문을 적어 두었다. “하나님! 무익한 종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타다 남은 웨슬레가 여기 누웠습니다.” 그리고 35세의 나이에 죽음을 기다리다가 그때 은혜를 체험하고 몸도 치유되었다. 그 후 88세까지 장수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웨슬레는 말을 타고 지구 12바퀴의 거리를 돌며 복음을 전했고 평생 약 42,400번의 설교를 했고 200권이 넘는 신앙 서적을 남겼다. 작은 불꽃이 큰 불을 일으킨 것이다. 그런 거룩한 불꽃을 점화시키라. 연약하고 작은 불꽃도 성령님이 기름을 부어 주시고 자신도 땀 흘려 장작을 넣으면 큰 불길로 변한다. 큰 불길 속에서 뜨겁게 타오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정말 어려운 것은 작은 불길 속에서도 뜨겁게 타오르는 것이다.
< 열매 맺는 삶을 살라 >
복음은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복음 안에서 의인이 되고 영생을 얻는다. 그러나 의인으로 인정받고 끝나지 말고 의인답게 살아야 한다. 구원 자체도 열매지만 구원 받은 성도는 실제적인 삶의 열매도 많이 맺어야 한다(13절). 늘 현재보다 조금 더 성숙하게 변화되려고 하라. 물론 사람의 변화가 말처럼 쉽지는 않다.
어느 날 전갈이 강물이 불어 강을 건널 수 없자 개구리에게 “나 좀 태워 줘.”라고 했다. 개구리가 반문했다. “네가 등에서 나를 물면 내가 죽는데 어떻게 태워 주니?” 전갈이 대답했다. “너는 뇌도 없니? 생각해 봐. 너를 물으면 나도 같이 죽는데 물겠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서 개구리가 전갈을 태워 주었다. 그런데 강을 건너는데 갑자기 전갈이 개구리를 꽉 물어 둘 다 빠져 죽게 되었다. 그때 개구리가 왜 물었느냐고 묻자 전갈이 대답했다. “나는 물어야 하는 전갈이잖아.”
천성은 변화되기가 힘들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변화시키실 수 있다. 성경을 보면 수많은 사람이 변화되어 멋지게 쓰임 받았다. 선한 열매를 맺도록 힘쓰라. 이전보다 더 성숙해져서 얼굴과 복장과 마음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잘 나타내라. 불신자들은 그 열매를 본다. 세상적인 성공은 없어도 신앙적인 성숙은 있어야 한다. 세상적인 성공은 옵션이지만 신앙적인 성숙은 필수다.
한 아이가 날 때부터 머리가 통뼈였다. 보통 사람은 머리뼈에 금이 있어서 자라면서 머리도 동시에 커지는데 그 아이는 머리가 통뼈라서 몸이 자라면서도 머리가 자라지를 못해 결국 3살에 죽었다. 그때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는가? 태어나고서 자라지 못하는 것처럼 비극적인 일은 없다. 구원받았으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열매 맺는 모습이 있어야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