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ㄹ)네 2)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 믿음이 약해지지 말라 >
아브라함의 믿음은 희망이 없을 때 희망을 가진 믿음이었다(18절). 하나님이 그의 후손을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처럼 주시겠다고 약속했지만 수십 년간 태가 닫힌 상태에서 아내가 90세가 되었는데 어떻게 약속이 이뤄지겠는가? 상식적으로는 전혀 희망이 없어도 그는 희망을 가졌다. 그처럼 절망 중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감사하고 찬양하면 희망과 기회도 생기고 최종적인 승리의 역사도 주어진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은 믿음의 중요한 특징이다. 현실은 삭막하고 비관적이라도 현실만 바라보지 말고 믿음의 눈으로 먹구름 뒤에 있는 태양을 보라. 믿음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미래를 창조하는 능력이 있다. 또한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원천이다. 진실한 믿음을 가졌다면 여리고 성과 같은 큰 문제의 장벽들이 무너지고 비전을 이루는 꿈과 같은 날을 맞이할 것이다.
큰 믿음을 가져도 환경이 계속 안 좋게 진행되면 점차 믿음이 약해질 수 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다(19절).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른 것이다.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아는 것을 넘어서는 믿음을 가지라. 때로는 아는 것이 믿음을 가장 저해한다. 세상적인 지식 때문에 믿음이 위축되거나 후퇴하는 경우도 많다. 경험과 지식을 초월하는 믿음을 가지라.
신앙생활이란 지식과 믿음이 끊임없이 전쟁하는 삶과 같다. 성경을 보면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환경을 보면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때는 “믿음을 따를 것인가, 지식을 따를 것인가?”를 놓고 영적인 전쟁을 치러야 한다. 아브라함은 그 전쟁에서 지식과 감각과 이성의 편을 들지 않고 믿음의 편을 들어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고통이 있느냐보다 고통 중에 어떻게 믿음으로 대응하느냐가 중요하다.
< 믿음의 행진을 지속하라 >
고난의 쓴물뿐만 아니라 쾌락의 단물도 믿음 생활을 방해하기에 성공했을 때도 끝까지 겸손함을 잃지 말라.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티끌이나 재와 같다고 고백했다(창 18:27). 그런 겸손한 자아 인식을 가지라. 사람은 머리카락 굵기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뇌의 실핏줄 하나만 터져도 누워서 똥오줌을 받아내는 존재가 된다. 특별한 사람은 없다. 사람은 거의 비슷하다.
어떤 경우에도 교만하지 말고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늘 하나님을 붙들고 살라. 유혹과 시련 중에도 믿음이 흔들리지 말고 찬란한 꿈과 비전을 품고 겸손하게 나아가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세계 선교에 동참하는 비전을 가지라. 찬란한 꿈에 비해 현재의 모습이 많이 부족해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면 때가 되어 놀라운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처칠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낙제해서 1년을 더 공부했다. 에디슨도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에서 쫓겨날 정도로 공부를 못했다. 링컨도 살면서 14번이나 크게 실패해서 신경쇠약까지 걸렸었다. 잘 믿어도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으로 나아 < 믿음이 약해지지 말라 >
아브라함의 믿음은 희망이 없을 때 희망을 가진 믿음이었다(18절). 하나님이 그의 후손을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처럼 주시겠다고 약속했지만 수십 년간 태가 닫힌 상태에서 아내가 90세가 되었는데 어떻게 약속이 이뤄지겠는가? 상식적으로는 전혀 희망이 없어도 그는 희망을 가졌다. 그처럼 절망 중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감사하고 찬양하면 희망과 기회도 생기고 최종적인 승리의 역사도 주어진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은 믿음의 중요한 특징이다. 현실은 삭막하고 비관적이라도 현실만 바라보지 말고 믿음의 눈으로 먹구름 뒤에 있는 태양을 보라. 믿음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미래를 창조하는 능력이 있다. 또한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원천이다. 진실한 믿음을 가졌다면 여리고 성과 같은 큰 문제의 장벽들이 무너지고 비전을 이루는 꿈과 같은 날을 맞이할 것이다.
큰 믿음을 가져도 환경이 계속 안 좋게 진행되면 점차 믿음이 약해질 수 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다(19절).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른 것이다.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아는 것을 넘어서는 믿음을 가지라. 때로는 아는 것이 믿음을 가장 저해한다. 세상적인 지식 때문에 믿음이 위축되거나 후퇴하는 경우도 많다. 경험과 지식을 초월하는 믿음을 가지라.
신앙생활이란 지식과 믿음이 끊임없이 전쟁하는 삶과 같다. 성경을 보면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환경을 보면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때는 “믿음을 따를 것인가, 지식을 따를 것인가?”를 놓고 영적인 전쟁을 치러야 한다. 아브라함은 그 전쟁에서 지식과 감각과 이성의 편을 들지 않고 믿음의 편을 들어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고통이 있느냐보다 고통 중에 어떻게 믿음으로 대응하느냐가 중요하다.
< 믿음의 행진을 지속하라 >
고난의 쓴물뿐만 아니라 쾌락의 단물도 믿음 생활을 방해하기에 성공했을 때도 끝까지 겸손함을 잃지 말라.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티끌이나 재와 같다고 고백했다(창 18:27). 그런 겸손한 자아 인식을 가지라. 사람은 머리카락 굵기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뇌의 실핏줄 하나만 터져도 누워서 똥오줌을 받아내는 존재가 된다. 특별한 사람은 없다. 사람은 거의 비슷하다.
어떤 경우에도 교만하지 말고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늘 하나님을 붙들고 살라. 유혹과 시련 중에도 믿음이 흔들리지 말고 찬란한 꿈과 비전을 품고 겸손하게 나아가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세계 선교에 동참하는 비전을 가지라. 찬란한 꿈에 비해 현재의 모습이 많이 부족해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면 때가 되어 놀라운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처칠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낙제해서 1년을 더 공부했다. 에디슨도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에서 쫓겨날 정도로 공부를 못했다. 링컨도 살면서 14번이나 크게 실패해서 신경쇠약까지 걸렸었다. 잘 믿어도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성도의 앞날을 멋지게 마무리해 주실 것이다. 때로 어려움을 만나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감사를 잃지 말라. 성도에게는 실패의 순간도 하나님께 영광 돌릴 기회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붙잡고 나아가면 반드시 반전의 기회는 찾아온다. 믿음만 잃지 않으면 성공적인 삶의 길도 잃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실패의 순간은 있다. 아브라함은 두려워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고 다윗도 간통과 살인죄를 저질렀지만 멋지게 쓰임 받았다. 찬란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고난과 낙심 중에도 믿음의 행진을 지속해서 아브라함의 복을 얻어 누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