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4장 13-14절
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복된 인물을 꿈꾸라 (로마서 14장 13-14절)
< 복된 인물을 꿈꾸라 >
예전에 미국에서 경찰이 총으로 흑인을 죽인 것에 대한 보복으로 한 흑인이 백인 경찰 5명을 조준 사격해서 죽였다. 차별이 상처를 낳고 상처가 폭력과 보복을 낳은 것이다. 요새 지구촌이 인종차별, 지역차별, 성차별, 계층차별, 종교차별 등 각종 차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차이까지 차별로 여기는 병든 마음도 잘 극복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남을 차별하지 않는 건강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차별하는 마음을 가지고 서로 비판하지 말라. 차별은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행하는 것만은 아니다. 진짜 높은 자는 낮은 자를 오히려 덜 차별한다. 높은 위치에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남이 자신을 높여 주니까 차별할 이유와 필요성이 적다.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차별하기보다 높든지 낮든지 교만한 자가 남을 차별한다. 때로는 높은 자보다 낮은 자가 자신을 높게 보이려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어떤 무리를 싸잡아 비하시키는 경우도 많다.
요새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많다. 부잣집에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청년과 가난한 집에서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청년은 출발부터 너무 달라서 경쟁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현실에 대해 한탄만 하지 말라. 뒤편에서 출발했어도 얼마든지 역전 인생이 가능하다고 여기고 인물의 길을 준비하라. 단기간에 대박 축복을 이루지 못해도 장기 플랜을 가지고 후대의 길을 열어 주겠다는 넉넉한 마음과 믿음으로 미래를 준비하라.
기독교는 가문의 복을 인정한다. 선대가 축복의 길을 잘 닦아 그의 후대가 앞선 출발 지점에서 복과 풍요를 누리며 사는 것을 불공평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정의로 인정한다. 어느 사회든지 부모의 물질을 자녀에게 다 물려주게 하지 않는다. 선진국은 약 40-60%의 상속세를 내게 하고 부모의 재산을 정당하게 후손에게 물려주게 한다. 그 정도의 공공책무를 완수하고 재산을 물려받는 것은 거의 정의에 가깝다는 뜻이다.
선대의 땀의 흔적으로 생긴 차이까지 차별로 몰아가고 한탄하는 것은 오히려 정의롭지 못한 마음일 수 있다. 선대 및 가문의 땀의 대가를 후대가 정당하고 적절하게 누리는 것은 불의가 아니다. 선대의 땀을 제로로 만들고 당대는 무조건 똑같이 출발해야 한다는 완벽한 공산사회의 개념은 오히려 불공평한 개념이고 이뤄지기도 힘든 개념이다. 실제로 공산사회에 오히려 더 심한 신분상의 차별과 재산상의 차별이 존재하는 경우도 많다.
역사상 어떤 공산국가도 지금까지 완벽한 공산사회를 이루지 못했고 이뤄질 수도 없다. 완벽한 공산사회는 ‘땀의 차이’나 ‘사람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기에 오히려 불의한 사회다. 물리적인 완벽한 공평은 가장 불의한 불공평이 될 수 있다. 완벽한 공산사회는 허구다. 가장 의로운 세계인 천국에도 질투의식과 비교의식을 낳지 않는 ‘상급의 차이’가 존재하는데 하물며 이 땅에서 어떻게 완벽한 공산사회를 만들 수 있겠는가?
가문의 복을 인정해 주라. 부모의 차이로 인해 생긴 인생 출발에서의 적절한 차이도 인정해 주라. 그런 현실을 놓고 한탄하기보다는 그런 현실을 인정하고 내 자녀에게만은 좀 더 좋은 길을 열어 주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고 자신이 좋은 선대로서 노력하라. 그러면 단기간에 복의 문이 활짝 열릴 때도 있지만 그런 단기간의 복이 없어도 후대를 위해 조금이라도 더 복의 길을 넓혔다고 생각하라.
후대를 위해 재산을 많이 남기라는 말이 아니다. 후대를 위해 남길 것이 재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가치관과 정신을 남겨 주어야 하고 특히 바른 믿음을 남겨 주어야 한다. 그러면 후대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와 은혜 안에서 멋진 반전의 역사를 이뤄낼 수 있다. 그런 복된 가문과 복된 인물을 꿈꾸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