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4장 12-17절
12 어떤 말씀이 내게 가만히 이르고 그 가느다란 소리가 내 귀에 들렸었나니 13 사람이 깊이 잠들 즈음 내가 그 밤에 본 환상으로 말미암아 생각이 번거로울 때에 14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러서 모든 뼈마디가 흔들렸느니라 15 그때에 영이 내 앞으로 지나매 내 몸에 털이 주뼛하였느니라 16 그 영이 서 있는데 나는 그 형상을 알아보지는 못하여도 오직 한 형상이 내 눈 앞에 있었느니라 그 때에 내가 조용한 중에 한 목소리를 들으니 17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
사랑을 앞세워 말하라 (욥기 4장 12-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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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영혼을 지키는 길 >
지금 세상은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특히 사탄은 거짓의 천재로서 나쁜 의도를 가지고 얼마든지 좋은 모습으로 변장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므로 좋은 것처럼 보이는 것도 다 믿지 말고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판단해서 내 영혼을 지키라. 본문이 주는 교훈으로서 내 영혼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환상을 다 믿지 말라. 어느 날 엘리바스는 자신의 귀에 어떤 세미한 말씀 소리가 들리는 것을 느끼고 깊은 밤에 비몽사몽 상태에서 어떤 환상을 보았다(12-13절). 그 환상이 하나님이 주신 환상인지 아니면 헛된 환상인지는 학자들마다 견해 차이가 있다. 그 환상은 실제로 하나님이 주신 환상이 아닐 수도 있다. 그 말은 환상을 다 믿지 말라는 말이다. 잘못된 환상이나 망상이 없게 하려면 비판과 정죄를 삼가고 먼저 나를 살피고 회개하며 찬란한 내일의 환상을 가지라. 참된 환상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그 환상은 현실이 된다.
둘째, 체험을 다 믿지 말라. 엘리바스는 자신의 환상으로 인해 생각이 복잡해지고 마음이 불안해지면서 두려움과 떨림으로 뼈마디가 흔들리는 것처럼 몸에 전율을 느꼈다(14절). 환상으로 인해 몸에 전율을 느끼는 신비 체험을 한 것이다. 그의 신비 체험이 자신의 영성을 과시하려고 가짜로 꾸며낸 것이 아니라 진짜일 수 있지만 그런 체험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즉 신비 체험이나 기적 체험이 유익도 있지만 다 유익한 것은 아니다. 체험을 너무 앞세우지 말라. 체험 때문에 마음이 높아지면 오히려 영성이 떨어진다.
셋째. 영을 다 믿지 말라. 본문 15절에서 엘리바스가 언급한 영은 악령이나 유령이 아닌 하나님의 영을 뜻하지만 그가 실제로 하나님의 영을 봤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는 자신 앞에 그 영이 서 있을 때 그 형상을 알아보지는 못했어도 한 형상이 그의 눈앞에 있는 것은 알 수 있었다(16절). 그러나 그가 보았다는 하나님의 영과 형상은 거짓이나 과장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므로 영을 다 믿지 말라. 성령님은 인격이시기에 상식과 인격을 말살하지 않는다.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광신은 참된 성령 충만이 아니다.
넷째, 음성을 다 믿지 말라. 하나님의 형상이 엘리바스의 눈앞에 있었을 때 그가 조용한 중에 한 목소리를 들었다(16절). 그 목소리는 사람은 결코 완벽하게 의롭거나 깨끗할 수 없음을 강조한 목소리였다. 엘리바스가 환상 체험 중에 들은 인간의 연약성을 강조한 목소리는 구구절절이 옳은 소리지만 그 소리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있다. 마음속에 들려오는 어떤 음성을 다 믿지 말라. 그 음성이 참된 음성인지를 알려면 성경이 뒷받침해야 하고 감동과 임팩트가 있어서 영혼을 살려야 한다.
< 사랑을 앞세워 말하라 >
왜 본문의 엘리바스가 언급한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었을 수도 있는가? 욥기 42장 7절을 보면 하나님이 엘리바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결국 엘리바스가 신비 체험을 내세워 한 본문의 말도 옳은 말이 아닐 수 있다는 암시다. 왜 그런가? 진리로 포장된 말을 가지고 고난에 빠진 친구를 비판하고 정죄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판과 정죄가 얼마나 주의해야 할 것인지를 잘 교훈한다.
어떤 사람은 성경 말씀을 인용해 남을 비판하고 정죄한다. 그처럼 나의 비판과 정죄가 옳음을 증명하려는 수단으로 성경 말씀을 함부로 인용하지 말라. 왜 욥기에 나오는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의 주옥같은 말들이 다른 성경 말씀에 비해 사람들로부터 덜 인용되는가? 욥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용도로 쓰였기 때문이다. 때로는 사탄과 이단도 성경 말씀을 인용해서 미움과 혐오를 조장하고 갈등을 일으켜 영혼을 무너뜨린다. 그래서 바른 분별력이 중요하다.
욥의 친구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보면 틀린 말이 아니라 오히려 인생의 깊은 지혜가 담긴 주옥같은 말이다. 그래서 욥기를 잠언, 전도서와 함께 ‘지혜서’로 분류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욥의 세 친구의 주옥같은 말을 욥의 말같이 옳지 못하다고 하신 것은 그들의 말에 사랑이 아닌 정죄가 깃들었기 때문이다. 성경 말씀을 어떤 상황에서 어떤 동기로 적용하는가가 중요하다. 성경 말씀을 정죄의 도구로 사용하지 말고 성경 진리를 말할 때도 사랑을 앞세워 말하라.
누가 고통 중에 있으면 고통을 잘 해석해서 말해 주기보다 사랑의 말을 통해 그 고통의 상처를 싸매 주라. 예수님은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그의 고통을 죗값의 열매라고 하지 않고 그가 천국의 복과 신령한 은혜를 얻게 하는 계기로 삼으셨다. 앞으로 고통에 빠진 사람과 세상을 볼 때마다 고통을 잘 분석하는 철학자가 되기보다 사랑을 앞세워 말하고 행동하는 작은 예수가 되어 사람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초석이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