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0장 34-39절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반전의 역사를 이루라 (마태복음 10장 34-3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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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전의 역사를 이루는 길 >
본문 마지막 구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그처럼 자기 목숨을 잃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영생을 얻는 반전의 역사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본문 34절을 보라.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이 말씀은 혈기를 잘 부리고 잘 싸우는 교인이 제일 좋아하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싸워도 좋다는 말씀이 아니다. 이 말씀에서 화평은 참된 화평보다는 무력에 의한 화평을 뜻한다.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제국들을 굴복시키는 무력에 의한 회복과 번성과 평화를 가져다주실 것이라고 믿었지만 예수님은 무력적인 외적인 평화보다 본질적인 내적인 평화를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
메시야는 평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다고 했다(사 9:6). 그런데 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화평이 아닌 검을 주러 이 땅에 오셨다고 하셨는가? 이 말씀에서 검은 죄악과 불의를 제거하는 성령의 검을 뜻한다. 에베소서 6장 17절을 보면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는 말씀이 있다. 결국 검을 주러 오셨다는 말씀은 복음과 말씀으로 죄악과 불의를 척결하는 과정에서 화평이 깨질 수도 있다는 말씀이다. 평화를 위해 최대한 힘쓰되 때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불화도 각오하라.
2.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라
본문 35-36절을 보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복음과 진리를 위해서 필요하다면 불화도 각오하라. 다만 자신의 잘못된 언행과 태도로 가는 곳마다 불화를 일으키면서 이 말씀을 갖다 붙이지는 말라. 말씀을 자기 편의대로 갖다 붙여 이용하는 것은 십계명의 3계명인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지 말라는 계명을 범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본문 37절을 보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1차 대상은 부모나 자녀와 같은 가족이다. 그런 가족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라는 말은 가족을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가족을 사랑하면서 예수님을 더 사랑하라는 말이다. 결국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라는 말이다.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면 참된 해방과 축복과 반전의 역사가 펼쳐진다.
3.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라
본문 38절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은 “죽으면 죽으리라. 잃으면 잃으리라.”라는 믿음을 가지라는 말씀이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본문 39절처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고 주님을 위해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영생을 얻는 반전의 역사가 일어난다. 결국 죽으면 죽으리라고 하면 오히려 죽지 않고 잃으면 잃으리라고 하면 오히려 잃지 않는다. 죽는 길이 사는 길이고 잃는 길이 얻는 길이다.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은 죽는 길에서 사는 길을 찾아 반전의 역사를 이뤘던 인물들이다. 왜 그런 역사를 이루지 못하는가? 십자가를 지지 않기 때문이다. 고난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 고난은 인물이 되는 조건이다. 명품 인생은 반전의 역사를 이룬 인생이다. 주위를 살펴보면 죽을 것 같은 사람이 살아나고 살 것 같은 사람이 죽는 반전의 스토리가 허다하다. 습관적인 삶과 신앙에는 감동적인 스토리도 없고 감격도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끔 고난을 허락하신다. 반전의 역사를 통해 삶의 감격을 회복하라는 뜻이다.
< 반전의 역사를 이루라 >
자유가 억압이 되지 않고 오히려 억압이 자유가 되는 반전의 역사가 삶에서 나타나도록 필요하다면 익숙했던 삶을 과감히 버리라. 하나님 안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면 걸림돌은 디딤돌이 되고 서러움에 젖은 눈물 골짜기는 생수가 나오는 샘물 골짜기가 된다. 목마름과 메마름을 잘 견디면 하나님이 은혜의 단비를 내려 마음과 대지를 적셔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힘들어도 결코 절망하지 말고 더욱 하나님을 새롭게 붙잡으라.
이사야 49장 15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기에 성도는 환난과 시련을 이겨 내고 반전의 역사를 써 내려갈 수 있고 역전 인생을 이룰 수 있다. 늘 하나님을 꼭 붙잡고 서로의 손도 꼭 붙잡고 나아가면서 넘어질 때마다 더 높이 일어서는 반전의 역사를 이루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언하는 복된 인물이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