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8장 16-25절
16 첫째 달 열넷째 날은 여호와를 위하여 지킬 유월절이며 17 또 그 달 열다섯째 날부터는 명절이니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 것이며 18 그 첫날에는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며 19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숫양 일곱 마리를 다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께 화제를 드려 번제가 되게 할 것이며 20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수송아지 한 마리에는 십분의 삼이요 숫양 한 마리에는 십분의 이를 드리고 21 어린 양 일곱에는 어린 양 한 마리마다 십분의 일을 드릴 것이며 22 또 너희를 속죄하기 위하여 숫염소 한 마리로 속죄제를 드리되 23 아침의 번제 곧 상번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24 너희는 이 순서대로 이레 동안 매일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의 음식을 드리되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 드릴 것이며 25 일곱째 날에는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니라
무교절 절기가 주는 교훈 (민수기 28장 16-25절)
< 무교절 절기가 주는 교훈 >
왜 하나님이 절기를 주셨는가? 특별한 날을 지키게 하심으로 삶을 생동감 있게 만드시려는 뜻이다. 또한 절기를 기다리면서 기다림의 훈련을 하시려는 목적도 있다. 절기는 사다리의 단과 같다. 사다리의 단을 하나씩 올라야 높이 오르듯이 절기를 잘 지나야 영적인 키다리 인생이 된다. 나의 나날들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의미 있게 만들도록 하나님은 기다림의 날인 절기를 제정해 지키라고 하셨다. 본문에 언급된 유월절에 이어진 무교절 절기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1. 하나 됨을 이루라
첫째 달 열넷째 날은 유월절이다(16절). 유월절은 출애굽을 기념하는 우리나라의 광복절 같은 절기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종종 같은 절기로 혼동한다. 두 절기가 바로 이어지고 유월절에도 무교병을 먹었기 때문이다. 유월절은 1월 14일에 따로 제사를 드리지 않고 전 가족이 모여 유월절 저녁 식사를 하며 지켰고 무교절은 1월 15일부터 7일간 해방 기념 축제를 하며 지켰다.
이스라엘은 무교절 축제를 통해 선민의 정체성을 굳게 했다. 믿음은 스스로 과시하는 것이 아니고 공동체에서 하나 됨을 추구하면서 성숙해진다. 초대 교회 때 유대인 출신 신자는 음식 문제나 날을 지키는 문제로 이방인 출신 신자를 비판했다. 그러나 ‘날’을 잘 지키는 것보다 ‘나’를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 안에서’라는 본질적인 점에서 같다면 작은 차이는 넉넉히 극복하라. 차이를 극복하라는 말이 똑같이 되라는 말이나 서로 꼭 붙어 있으라는 말이 아니다. 차이가 있고 떨어진 채로도 얼마든지 하나 될 수 있다.
2. 죄악을 버리라
무교절은 1월 15일부터 21일까지 7일 동안 무교병을 먹으며 지켰는데 무교절 첫째 날과 마지막 날에는 성회로 모여서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했다(17-18,25절). 유월절에는 죄악의 상징인 누룩이 없는 무교병을 먹었고 집안에서는 누룩을 제거하는 청소를 했다. 그것은 죄악을 버려야 함을 상징하는 행위다. 사람이 죄악을 온전히 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회개가 중요하다.
지난 삶이 어둠이었을지라도 진심으로 회개하면 그때부터 복된 새날이 열린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성공과 소유가 종종 헛되게 느껴진다. 그 느낌은 “이제 내게 오라.”라는 하나님의 초청장이다. 그 초청에 응해서 회개함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 인생의 밤이 비극만은 아니다. 그때 진심으로 회개하면 소중한 것을 잃어도 더 소중한 것을 얻고 비유적인 의미에서 사람에게도 지는 야곱 인생이 하나님을 이기는 이스라엘 인생으로 변한다.
3. 은혜에 감사하라
무교절 제사 때 7일 동안 매일 드리는 제물의 양(19-23절)은 초하루 제사 때 드리는 제물의 양(11-15절)과 똑같다. 언제 무교절 제물을 드렸는가? 상번제는 아침과 저녁에 두 번 드려졌는데 아침의 상번제 후에 추가로 무교절 제물을 드렸다. 결국 7일간 진행된 무교절 행사 기간에는 초하루 제사 때 드리는 제물보다 7배나 많은 제물을 드린 셈이다. 그것은 출애굽의 은혜를 기념하며 넘치게 감사 표현을 하라는 뜻이다.
감사는 신앙의 깊이를 나타내 주는 핵심 표식이다. 교리에 매달리는 것은 심오한 믿음 같지만 오히려 초보 신앙이다. 행복은 감사에 비례한다. 감사하라는 말은 전혀 아파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상처가 생기면 아파할 줄도 알라. 아파할 줄 알 때 타인 감수성이 커지고 남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이 커진다. 남의 아픔을 외면하면 나의 아픔도 외면된다. 아프면 아파하고 그 아픔을 믿음 안에서 감사로 승화시키라. 행복의 비결은 특별히 없다. 하나님의 뜻과 마음에 나를 일치시키면 감사와 행복이 넘치게 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