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2장 6-14절
6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연소하고 당신들은 연로하므로 뒷전에서 나의 의견을 감히 내놓지 못하였노라 7 내가 말하기를 나이가 많은 자가 말할 것이요 연륜이 많은 자가 지혜를 가르칠 것이라 하였노라 8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 9 어른이라고 지혜롭거나 노인이라고 정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내 말을 들으라 나도 내 의견을 말하리라 11 보라 나는 당신들의 말을 기다렸노라 당신들의 슬기와 당신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었노라 12 내가 자세히 들은즉 당신들 가운데 욥을 꺾어 그의 말에 대답하는 자가 없도다 13 당신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진상을 파악했으나 그를 추궁할 자는 하나님이시요 사람이 아니라 하지 말지니라 14 그가 내게 자기 이론을 제기하지 아니하였으니 나도 당신들의 이론으로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리라
깨달음의 은혜를 입는 길 (욥기 32장 6-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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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을 그치고 참으라
욥기 27-31장에서 욥이 장황하게 자신의 의를 내세우자 세 친구들은 질렸는지 말을 그쳤다(1절). 변론과 설득이 통하지 않으면 잠시 말을 그치는 것이 낫다. 내가 말을 그치면 상황이 내게 불리하게 돌아갈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내가 의로운 길에 있으면서 말을 그치고 기도하면 내게 유리하도록 나 대신 누군가가 말할 것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말씀하실 것이다. 때로는 하나님이 간접적으로 환경, 질병, 고통 등을 통해 말씀하시며 깨닫게 하실 것이다.
욥의 경우에는 세 친구들이 말을 그치자 하나님이 엘리후를 대신 등장시켜서 욥에게 말하게 하셨다. 그들이 치열하게 변론할 때는 그들의 나이가 자신보다 여러 해 위였기에 엘리후는 끼어들어 말하기를 참다가 그들이 더 이상 욥의 말에 반박하지 않는 것을 보고 대화에 끼어들었다(4-5절). 그것을 보면 엘리후는 자제심과 인내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처럼 말을 그치고 최대한 참아야 깨달음과 설득력이 생긴다.
2. 성령으로 충만하라
욥의 긴 독백에 세 친구들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엘리후가 대답하며 말했다. “나는 연소하고 당신들은 연로해서 뒷전에서 나의 의견을 감히 내놓지 못했습니다. 나이와 경험이 많은 사람이 지혜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엘리후는 사람의 속에 있는 영과 전능자의 숨결이 깨달음을 주시기에 어른이라고 지혜롭거나 노인이라고 정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고 여겼다(8-9절).
깨달음을 주는 내면의 영과 전능자의 숨결은 성령을 뜻한다. 그처럼 사람은 성령으로 충만해야 신적인 깨달음을 얻는다. 성령 충만의 반대말은 무엇인가? 문자적인 반대말은 ‘악령 충만’이고 성경적인 반대말은 ‘성령 소멸’이고(살전 5:19) 일반적인 반대말은 ‘자기(자아) 충만’이다. 비유적인 의미로 자신을 죽이는 길이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길이다. 왜 성령으로 충만하면 용서가 쉬워지고 깨달음이 깊어지는가? 자신을 죽이면 자신의 상처도 따라서 죽으면서 마음에 평안이 넘치고 깨달음이 깊어지기 때문이다.
3. 자기 이론을 삼가라
엘리후는 욥이 자신에게 어떤 이론을 제기하지 않았기에 자신도 세 친구들의 이론을 내세워 욥에게 대답하지 않겠다고 했다(14절). 그 말은 사람의 이론이 깊은 깨달음을 주지 못한다는 암시가 깃든 말이다. 그처럼 이론으로는 깨달음을 얻기 힘들고 사람의 마음도 얻기 힘들다. 복음은 이론을 넘어서는 것이다. 복음으로는 치유가 나타나도 이론으로는 치유가 나타나지 않는다. 어떤 전도 프로그램은 이론 무장을 잘 시킨다. 그러나 이론으로 잘 무장된 사람보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다가서서 품는 사람이 더 영혼을 얻는다.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불신자가 의문을 표할 때 매우 논리적인 대답으로 그 의문을 잘 풀어 주어서 그 정교한 이론에 감동을 받아 회개하는 사람은 사실상 거의 없다. 전도는 잘 준비된 논리로 불신자의 질문에 잘 대답하고 의문을 잘 풀어 주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불신자가 골탕 먹이는 어려운 질문을 하면 정답을 주겠다는 자세보다는 사랑하는 마음과 태도를 전달하면서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낫다. 이론적으로 잘 설명하기보다 지속적인 사랑을 앞세울 때 나도 깨달음을 얻지만 상대에게도 깨달음을 주면서 그의 마음과 영혼을 얻을 수 있다.
4. 진실하기를 힘쓰라
엘리후는 자신에게 할 말이 가득하다고 했다(18절). 그리고 결국엔 참았던 말을 하면서 결코 사람의 얼굴을 보아서 말하거나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면서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21절). 공의와 진리를 따라 말하겠다는 뜻이다. 그때 그는 욥의 편도 들지 않고 세 친구들의 편도 들지 않았다. 그는 아첨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만약 그가 아첨하는 식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벌을 받아 속히 죽을 것이라고 고백할 정도로 그는 진실하기를 힘썼다(22절).
누가 깨달음의 은혜를 입는가? 진실하기를 힘쓰는 사람이다. 왜 현대인들에게 내적인 갈등이 많은가? 진실의 결핍 때문이다. 사람들은 진실을 외면하면서 진실을 찾는 모순적인 행동을 할 때가 많다. 수시로 “내가 진실을 잃지는 않았는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살고 있는가? 말씀과 기도를 앞세워 살고 있는가?”라고 자문하라. 진실에 눈을 뜨면 삶은 축제가 되고 곳곳에 숨겨진 신비에 눈뜨게 된다. 또한 진실한 사람을 통해 세상과 공동체는 조금씩 변화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