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6장 20-23절
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21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22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복 있는 자 (누가복음 6장 20-23절)
< 복 있는 자 >
외형주의에 사람은 속아도 하나님은 속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진리는 내면과 미래를 잘 보지 못하는 사람의 눈에는 역설처럼 보인다. 결국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복과 화의 개념은 사람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복 있는 자로 여기시는가?
1. 너희 가난한 자
본문 20절을 보라.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이 말씀은 가난한 자가 무조건 복이 있다는 뜻이 아니다. 무책임과 게으름에 의한 가난은 복이 아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너희 가난한 자’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가난한 자’를 뜻한다. 즉 예수님의 뜻대로 희생함으로 가난해진 사람을 뜻한다.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에 나오는 병행 구절에 의하면 이 구절의 ‘가난한 자’는 ‘심령이 가난한 자’를 뜻한다. 물질이 없으면서도 심령이 교만한 사람은 복이 없다. 반대로 물질이 있어도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부유하면서도 겸손한 자는 그 수가 아주 적기에 더욱 복된 자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가난해지는 것도 복이고 더 나아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는 것도 복이다.
또한 “너희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라는 말씀은 가난한 자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려고 하신 말씀이다. 가난 때문에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희망을 가지고 가난을 탈피하려고 힘써서 그 뜻을 이루면 결국 가난했던 것이 복이 된다. 궁극적으로 가난한 자가 어떤 복을 받는가? 하나님의 나라가 그의 것이 되는 복을 받는다. 즉 천국 평안을 얻고 최종적으로는 천국의 주인공이 된다.
2. 주린 자와 우는 자
본문 21절을 보라.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마태복음에 있는 병행 구절을 보면 ‘지금 주린 자’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라고 되어 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게 해서 주린 자에게 힘과 위로와 소망을 주려는 말씀이다.
우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한 말씀도 우는 자에게 천국 소망을 주시려는 말씀이다. 특히 눈물로 회개하면 천국 위로가 넘치게 되고 그때부터 놀라운 반전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결국 웃게 된다. 아모스 8장 11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것이 진짜 주리고 목마른 것이라고 했다. 의에 주린 배를 채워 주고 우는 자를 웃게 하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3. 십자가를 지는 자
본문 22절을 보라.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이 구절에서 핵심 말씀은 ‘인자로 말미암아’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스스로를 사람의 아들인 인자라고 하신 호칭에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의 아들로 오신 자란 암시가 담겨 있다. 결국 ‘인자로 말미암아’란 말씀은 ‘예수님으로 인해’라는 말씀이다.
자기 잘못으로 미움받고 욕먹고 악하다는 말을 듣고 버림받는 것은 저주지만 예수님으로 인해 미움받고 욕먹고 악하다는 말을 듣고 버림받는 것은 큰 축복이다. 성도란 예수님을 위해 고난의 십자가를 기쁘게 감수하는 사람이다. 십자가를 지는 복이 얼마나 큰지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면 기뻐하고 뛰놀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십자가는 십자가로 끝나지 않고 부활의 역사를 낳고 하늘의 큰 상급을 예비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