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6장 27-34절
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29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30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32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33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대접받길 원하면 대접하라 (누가복음 6장 27-34절)
< 원수를 사랑하고 축복하라 >
예수님은 원수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 원리로 다섯 가지 말씀을 하셨다. 첫째,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라.”라고 하셨다(27절). 둘째,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라.”라고 하셨다(28절). 셋째,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라고 하셨다(28절). 넷째,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라.”라고 하셨다(29절). 다섯째,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라고 하셨다(29절).
원수 사랑을 위한 구체적인 삶의 실천은 결코 쉽지 않다. 결국 원수 사랑은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거의 신적인 것으로서 하나님이 힘 주셔야 가능하다. 어떻게 그 힘을 얻는가? 내 인생의 주체가 내가 아닌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라.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이해와 용서도 쉽지 않다. 원수 사랑은 더욱 힘들다. 그러나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믿으면 용서의 능력이 생긴다. 그때부터 행복도 싹튼다. 사람이 하나님의 모습에 가장 가까울 때는 사랑하고 용서할 때다. 그때 사람은 가장 영광스럽게 되고 하나님께 가장 영광을 돌리게 된다. 가끔 마음이 너무 힘들면 이렇게 기도하라. “하나님! 이 상황을 이기도록 저의 마음을 붙잡아 주소서.” 그런 기도는 나의 책무 포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의 표현이다. 그때 신기하게 자기 마음과 상황을 극복할 힘이 생긴다.
가끔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부족함을 느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부족함을 느끼고 안타까워하는 사람을 오히려 귀히 쓰신다. 이제까지 내가 하나님을 많이 실망시키며 원수처럼 행했어도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나의 현실 속에 이미 넘쳐 있다. 그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며 증오심을 이겨 낼 때 하나님은 최고로 영광 받으시고 가장 복된 길을 열어 주신다.
< 대접받길 원하면 대접하라 >
본문 31절을 보라.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 구절은 기독교 윤리의 최고봉이라고 해서 흔히 황금률로 불려진다. 당시 유대 율법이나 다른 철학에도 유사한 가르침이 있었지만 예수님의 황금률은 “대접받고자 하는 만큼 대접하라.”라는 뜻보다는 “대접받고자 하기보다 대접하고자 하라.”라는 뜻에 가깝다. 즉 예수님의 황금률은 ‘더 대접받는 삶’보다 ‘더 대접하는 삶’에 초점이 있다.
예수님은 성도가 자신을 미워하고 대적하는 자도 사랑하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신적인 사람도 선대해야 한다고 차원 높은 삶을 도전하셨다(32-33절). 또한 받기를 바라고 꾸어 주는 것은 죄인들도 하는데 예수님은 성도가 받기를 바라고 꾸어 주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다(34절). 성도 간에 꾸지도 말고 꾸어 주지도 말되 어쩔 수 없이 꾸어 줄 때는 이자받을 것을 생각하지 말라. 간단히 말하면 이기적으로 살지 말라는 말씀이다.
이기적인 욕심을 부리면 일시적으로는 더 얻는 것 같아도 결국 더 잃는다. 혹시 돈은 벌어도 행복과 평안과 후대의 축복 등 가치 있는 것들은 더 잃는다. 사람들은 누가 계산적이고 욕심을 부리는지 대략 느끼고 알기에 그런 사람을 보면 더 주고 싶지 않다. 하나님은 더욱 누가 계산적이고 누가 헌신적인지를 잘 아시기에 계산적인 사람에게는 덜 주시고 헌신적인 사람에게는 더 주신다. 계산하면 더 잃고 헌신하면 더 얻는다.
어떤 사역자는 몇 년 동안 교회로부터 사역비를 받지 못했어도 대접받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구차하게 남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러자 모든 상황을 아시는 하나님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누군가를 감동시키고 후원하게 하셔서 그의 사역과 생활의 필요를 채워 주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신묘한 방법이다. 대접받기보다 대접하려고 하는 것을 삶의 틀로 삼고 계산적으로 살지 않으면 오히려 계산을 초월한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가 주어진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