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6장 35-36절
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차별 없이 사랑하라 (누가복음 6장 35-36절)
< 자비를 베풀라 >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면 큰 상을 얻고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하셨다(35절). 왜 성도가 자비롭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이 자비하시기 때문이다(36절). 마태복음 5장 48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나님을 마태는 온전하신 하나님이라고 표현했고 누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라고 표현했다. 자비로운 삶이 온전한 삶이라는 암시다.
자비는 불교 용어만이 아니다. 온전한 삶이란 죄를 짓지 않는 삶을 뜻하기보다 자비로운 삶을 뜻한다. 죄를 짓지 않음으로 온전함을 나타내기보다 자비로운 행동으로 온전함을 나타내라. 요새 성 인지 감수성과 타인 감수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것이 자비로운 마음이다. 자기 특성을 따라 사는 독립심도 중요하지만 남의 특성을 인정하는 자비심은 더 중요하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너무 치열하게 살면 영혼이 메말라진다. 부부가 다 치열하게 살면 가정도 너무 치열해진다. 그래서 사회에는 치열하게 살면서 차가워진 마음을 녹여 줄 따뜻한 사람이 필요하다. 사회에 대단한 승리자들만 필요하지 않다.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 느끼는 내면의 허전함과 외로움을 달래 주고 높은 자리를 지키려고 애쓸 때 생기는 스트레스를 풀어 줄 따뜻한 사람도 필요하다.
사회에는 치열한 경쟁에서 1등을 하는 산 같은 사람만 필요하지 않고 음지에서 삶과 가정의 토대가 되어 주고 따뜻하게 안아 주는 대지 같은 사람도 필요하다. 자비로운 마음을 품고 어느 누구도 차별하거나 비하하는 마음을 가지지 말라. 남의 잘못된 행동은 냉철히 평가하되 그로 인해 그의 영혼까지 무시하지는 말라. 리더의 꿈을 품을 때 특히 필요한 것은 모든 영혼을 소중하게 여기고 공평하게 대하는 자비심이다.
< 차별 없이 사랑하라 >
어느 날 한 목회자가 사회적인 위치가 높은 성도를 따로 만나 조용히 말했다. “성도님! 교회에서 성도님에게 특별하게 대접하는 느낌을 주지 않겠습니다. 이해하십시오.” 개념이 있는 목회자다. 목회자에게 교인은 모두가 특별한 존재로서 선한 의도를 가지고 전략적으로 사랑의 표현을 절제하는 한은 있어도 다 공평하게 사랑한다. 사랑하는 대상이 더 순종적이고 더 사랑스러우면 감정적으로는 더 사랑하는 마음이 들지만 남 앞에서는 사랑의 표현을 절제한다. 그 사람만 특별히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타인 감수성과 교회 감수성이 있는 교인은 헌신하는 자신을 특별히 대해 주지 않는 목회자의 태도를 이해하고 존경하기에 왜 자신의 헌신을 몰라주냐고 섭섭해하지 않는다. 왜 그의 헌신을 모르겠는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어떤 교회는 교단 교회들 중에 제일 많은 후원금을 내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는다. 그래도 교단 소속 목사들은 다 안다. 그렇게 앞서 헌신하면서도 조용히 있으니까 더 인정받고 존경받는다.
내가 소리 내지 않고 헌신해도 교인들은 대략 안다. 그래도 교회 내에서 교인 간에 비교 의식과 질투심이 생기지 않도록 모르는 척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남들이 진짜로 몰라주어도 괜찮다. 그때 하나님은 더 알아주시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헌신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은 그를 띄워 주는 것을 절제하기 위해서다.
타인 감수성을 길러서 공평한 사랑을 주는 데 힘쓰고 사람을 경시하지 말라. 그래야 하나님도 나를 경시하지 않으신다. 나의 높아진 마음을 더욱 낮추고 사랑하고 용서하는 삶을 굳게 결단하라. 하나님은 사랑과 자비를 펼치는 성도를 하나님의 자녀로 여겨 주시고 사람의 생각을 초월해서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 주실 것이다. 늘 사랑과 대접과 자비가 넘치는 삶을 통해 더욱 복 받는 인물 성도가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