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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푸는 길 (출애굽기 30장 17-21절)
작성자 미션퍼블릭 등록일 2012-11-02
출애굽기 30장 17-21절
(17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8절)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되 그것을 회막과 제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으라/ (19절)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20절)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제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여호와 앞에 화제를 사를 때에도 그리 할지니라/ (21절) 이와 같이 그들이 그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할지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이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출애굽기(89) 문제를 푸는 길 (출 30장 17-21절)
 < 물두멍 >
 
   성막의 동문을 통과하면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번제단입니다. 번제단에서 제물을 태운 후에 그 다음으로 거치는 것이 물두멍입니다. 만약 이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지 않고 성소에 들어가면 죽습니다(19-21절).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려면 번제단도 반드시 통과해야 하지만 물두멍도 반드시 통과해야 합니다.
 
   번제단은 죄가 태워지는 것으로 회개를 상징합니다. 그처럼 번제단에서 죄가 태워졌지만 살면서 죄로 인해 또 더렵혀질 수 있습니다. 그 더렵혀진 삶을 깨끗하게 하려면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번제단 다음의 기구인 물두멍을 통과해야 합니다. 결국 이 물두멍의 원리는 보통 ‘성화’의 교리를 가르쳐 주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물두멍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습니까? 놋으로 만들어졌는데(18절), 특별히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놋 거울로 만들어졌습니다(출 38:8). 이 여인들의 헌신을 보십시오. 값으로 따지면 엄청난 값은 아니지만 여인들에게 거울은 단순히 값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소지품입니다. 그것은 마치 과부의 두 렙돈의 헌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여인들은 자신들의 소중한 놋 거울을 드릴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렇게 놀라운 헌신을 할 수 있습니다. 베다니의 삼 남매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는 예수님이 자신들의 집에 방문할 때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섬겼습니다. 심지어 마리아는 시집갈 때 쓰려고 모아 놓은 1년 품삯의 향유가 들어 있는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향유를 다 바쳤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의 은혜와 위로가 남달랐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예수님을 정말 사랑하면 받은 은혜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금보다 귀한 충성과 헌신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지시하는 방향으로 따라 소리 없이 기꺼이 호주머니를 비우고 그 헌신으로 거룩한 비전이 이뤄지는 것을 보고 음지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을 것입니다.
 
  < 문제를 푸는 길 >
 
   물두멍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요? 성막 기구 중 유일하게 물두멍만이 크기와 규모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것은 물두멍의 크기 및 물의 양에 제한이 없음을 나타냄으로 하나님의 무한한 용서를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당시 제사장들은 물두멍을 바라보면서 성결함의 중요성과 동시에 하나님의 무한한 용서를 느꼈습니다.
 
   어느 날, 베드로가 주님에게 용서에 관해 질문했습니다. “일곱 번까지 용서할까요?” 그때 주님이 대답했습니다. “일흔 번에 일곱 번까지 하라!” 이 대답에 담긴 심정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입니다. 그처럼 마음으로 거대한 물두멍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용서를 생각하고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 용서를 실천하는 자가 되십시오. 사실상 가장 위대한 성화는 용서의 성화입니다. 습관 중에서 가장 위대한 습관은 용서를 인격화하고 습관화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누리는 가장 위대한 자유는 용서로부터 오는 자유입니다.
 
   용서의 신학적 의미는 ‘그냥 가도록 놓아두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기막힌 일을 당했어도 하나님의 새 역사를 믿고 그를 그냥 가도록 놔두십시오. 자신의 원수를 스스로 갚으려고 하면 그 원수보다도 더 못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못난 사람하고 싸우면 같이 못난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용서로 못난 길을 벗어나십시오.
 
   용서는 항상 감정을 넘어서 선택하는 행위입니다. 용서에는 감정의 자리가 없어야 합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라고 했습니다(잠 19:11).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요 또한 자기에게도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자기에게 해를 끼친 사람들을 용서해준 사람들이 복 받는 일화로 가득한 책입니다.
 
   믿음이 어려운 것은 ‘복수의 작업’이 아닌 ‘용서의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눈은 눈으로 갚고, 이는 이로 갚는 한풀이의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사랑풀이와 용서풀이의 종교입니다. 무엇인가 문제가 풀리길 원하십니까? 그러면 용서하지 못한 사람을 기억해내고 그를 용서하십시오. 그러면 어느새 고민했던 문제가 풀리는 역사를 경험할 것입니다. 용서는 인간관계도 풀지만 어려운 문제도 푸는 신비한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용서풀이를 보고 은혜의 문을 닫고 있는 자물쇠를 풀어주실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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