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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대견스럽게 보십시오 (이사야 49장 1-7절)
작성자 미션퍼블릭 등록일 2011-11-18
이사야 49장 1-7절
(1절) 섬들아 내게 들으라 먼 곳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 (2절)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의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를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드사 그의 화살통에 감추시고/ (3절)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네 속에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 (4절)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하게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 하였도다 참으로 나에 대한 판단이 여호와께 있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 (5절)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태에서부터 나를 그의 종으로 지으신 이시요 야곱을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이시니 이스라엘이 그에게로 모이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 (6절)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7절)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왕들이 보고 일어서며 고관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신실하신 여호와 그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자신을 대견스럽게 보십시오 (이사야 49장 1-7절)
 < 강한 자의식을 가지십시오 >
 
   이사야에는 네 편의 <여호와의 종의 노래>가 있습니다. 본문은 그 두 번째 노래입니다. 이 노래의 주제는 “이스라엘을 선택해서 이방의 빛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메시아의 오심은 인류 구원을 위해 이미 계획된 것이었습니다(1절). 그리고 때가 되면 메시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것입니다(2-3절). 그 수고가 처음에는 헛되고 무익한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이 반드시 심은 대로 갚아주십니다. 그러므로 열매를 거두는 일이나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어떻게 메시아가 맡겨진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 안에서 강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5절). 그처럼 강한 자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자신을 이 땅에 보냈다는 의식을 가지고 사십시오. 그때 하나님은 그를 영화롭게 하고 그의 힘이 되어주실 것입니다. 그처럼 인간은 귀하고 가치 있는 존재인데 왜 생을 비관합니까? 자신의 가치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청년이 자주 죽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애인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죽고 싶다는 소리가 쑥 들어갔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죽고 싶다는 소리가 더욱 사라졌고 오히려 “이 아이를 두고 죽을 수 없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70억 인류 중에서 자신의 아이를 아가페의 사랑으로 키울 사람은 자기 밖에 없음을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자신의 가치를 인식하면서 도저히 죽을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왜 성도가 가치 있는 존재입니까? 그 주인이 귀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찮은 물건도 주인이 귀하면 귀해집니다. 같은 벼루라도 세종대왕이 사용한 벼루는 무엇보다 귀한 보물입니다. 같은 칼이라도 이순신 장군이 사용했던 칼은 보물이고, 같은 만년필도 링컨이 사용했던 만년필은 보물입니다. 그 물건 자체가 귀한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의 주인이 귀하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성도가 존귀한 이유는 성도의 주인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 자신을 대견스럽게 보십시오 >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는 누구일까요? 자식, 부모, 아내 등도 귀한 존재이지만 진짜 귀한 존재는 다름 아닌 바로 자신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자신이 자신에게는 최고의 존재입니다. 가끔 살다 보면 자신에 대해 실망감이 들면서 “나 같은 사람은 일찍 죽어야 해!”라고 말하는 사람을 봅니다. 그런 말은 심각한 자기 모독입니다. 또한 어떤 분은 기도할 때 “하나님! 이 벌레만도 못한 인간을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왜 자신이 벌레만도 못한 인간입니까? 그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겸손도 지나치면 실례가 됩니다.
 
   탕자가 집에 돌아올 때 얼마나 자책하는 마음이 있었겠습니까? 자기가 자기를 보아도 죽일 놈입니다. 사업하다 실패한 것도 아니고 창기와 함께 놀다가 재산을 탕진한 자기를 볼 때 정말 한심하고 스스로도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때 아버지가 어떻게 맞이합니까? 기쁨으로 맞이하고 잔치를 벌여줍니다.
 
   내가 나를 보는 관점과 아버지가 나를 보는 관점이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천하보다 가치 있게 보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왜 내게는 복을 주시지 않을까? 내가 가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일까?” 그러나 서운해 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 속에 이미 자신의 가치가 다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가치 있게 보고 대견스럽게 보십시오. 자신을 함부로 굴리지 마십시오. 성도의 삶은 초점이 현재가 아닌 미래에 있습니다. 믿음의 능력은 현재에도 나타나지만 미래에는 더욱 강하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미래가 있는 사람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제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절대로 기죽어 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자신을 가치 있게 여기시는데 자신이 자신의 가치를 부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도 내 생명이 건재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증거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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