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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손 인생의 축복 (요한복음 21장 3-4절)
작성자 미션퍼블릭 등록일 2011-11-29
요한복음 21장 3-4절
(3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빈 손 인생의 축복 (요한복음 21장 3-4절)
  < 함께 하는 사람은 자신의 거울이다 >
 
   미국의 한 집사가 앵무새를 길렀다. 그 앵무새는 딱 한 마디 말만 했다. “내게 키스해 줘요(Kiss me, please).” 그런데 근처의 목사 집에도 앵무새가 있었다. 그 앵무새는 목사 집을 방문한 집사를 보고 말했다. “우리 기도합시다(Let's pray).” 그 소리를 듣고 집사는 목사의 평소 언행이 어떤 모습인지를 짐작하며 목사가 너무 훌륭하게 보였다.
 
   목사 집 앵무새는 말도 은혜롭게 잘해야 한다. 개도 잘 키워야 한다. 개가 점잖게 짖지 않고 방정맞게 짖으면 은혜가 없다고 목사가 욕을 먹는다. 그런데 목사 집 앵무새가 “우리 기도합시다.”라고 하니 목사가 훌륭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 집사는 자기 앵무새가 좋은 말을 배우도록 목사 집 앵무새를 빌려갔다. 두 앵무새가 만났다. 목사 앵무새가 집사 앵무새에게 먼저 인사했다. “우리 기도합시다.” 그러자 집사 앵무새가 대답했다. “내게 키스해 주세요.” 그때 목사 앵무새가 흐뭇해서 말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야 제 기도에 응답 주셨군요.”
 
   이 꾸며낸 얘기는 한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 그것은 “사람이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함께 하는 사람’은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면 미래에 그 인생은 성공할 확률이 많고,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면 미래에 그 인생은 실패할 확률이 많다.
 
   좋으신 주님과 만나는 시간이 많은 것은 가장 큰 성공이고, 그 시간이 적은 것은 가장 큰 실패이다. 무엇이든지 주님과 멀리하게 하는 것은 저주이고, 주님과 가까워지게 하는 것은 축복이다. 성공으로 주님과 멀어지면 그 성공은 저주이고, 실패로 주님과 가까워지면 그 실패는 축복이다.
 
   때로는 실패의 빈손이 축복이 될 수 있다. 성공적인 세일즈맨은 거절당하는 순간부터 진짜 판매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사람에게는 “실패하느냐? 성공하느냐?”의 문제보다 “실패자가 되느냐? 성공자가 되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실패해도 실패자가 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단순히 성공하는 것보다 성공자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실패자에게 거침돌은 성공자에게 디딤돌이 된다. 중요한 것은 실패를 통해 주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다. 빈손으로 주님을 확실히 붙잡을 수 있다면 빈손도 축복이 된다. 본문은 빈손 인생도 축복이 될 수 있음을 잘 말해준다.
 
  < 인내해서 후회될 일은 없다 >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뵈려고 갈릴리에 온 제자들은 처음 며칠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큰 기대를 가지고 기다리면 그 기다림의 순간조차 황홀해진다. 그러나 기다림이 길어지자 그들은 낙심했다. 결국 조금 더 인내하지 못하고 다 물고기 잡으러 나갔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그 밤은 소득 없는 밤이 되었다(3절). 인내가 없으면 대개 소득도 없다.
 
   2차 대전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한 유대인 의사가 있었다. 그는 매일 가스실과 실험실로 떠나는 동족들의 죽음의 행렬을 목격하면서도 깨진 유리병 조각으로 매일 면도를 했다. 다른 사람들은 인생을 포기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오후 처형자들을 골라낼 때, 나치들은 삶의 의지로 불타는 그의 잘 면도된 턱을 보고 차마 그를 가스실로 보내지 못했다. 결국 그는 독일 패망 후 스페인으로 가서 유능한 외과 의사가 되었는데 그는 말했다. “하나님의 도움은 늦는 법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너무 성급할 뿐입니다.”
 
   성급히 포기하지 말라. 어려워도 인내하며 기다리면 기적과 변화의 순간은 반드시 온다. 우연히 생기는 기적은 없다. 대개 기적은 절망의 순간을 믿음과 기도로 버틴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인내는 쉽지 않지만 인내하면 많은 것을 얻는다. 성급하게 결정하면 후회하고 후퇴한다. 그러나 인내해서 후회될 일은 없다.
 
  < 꿈이 있어야 미래도 있다 >
 
   가끔 너무 힘들면 “이제 인생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꿈과 사명만 잃어버리지 않으면 끝난 인생은 하나도 없다. 인간의 절망은 오히려 하나님의 희망이다. 꿈을 버리지만 않으면 찬란한 내일은 반드시 주어진다.
 
   살다보면 힘든 일도 있다. 상처를 줄 때도 있고, 상처를 받을 때도 있다. 만약 그 상처만 생각한다면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마음이 힘들어진다. 그 상처를 급속히 치유하는 보약이 있다. 그것은 바로 비전이다. 역사는 비전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의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꿈과 비전을 포기하지 말라. 꿈이 있어야 미래도 있다.
 
   문익환 목사는 ‘꿈을 비는 마음’이란 시에서 노래했다. “개똥같은 내일이야/ 꿈 아닌들 안 오리오 마는/ 조개 속 보드라운 살 바늘에 찔린 듯한/ 상처에서 저도 몰래 남도 몰래 자라는/ 진주 같은 꿈으로 잉태된 내일이야/ 꿈 아니곤 오는 법이 없다네.”
 
   힘들어도 꿈을 잃지 말아야 아름다운 내일이 온다. 믿는다는 것은 주님의 꿈을 나의 꿈으로 삼는 것이다. 참된 믿음은 어려움이 있어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죽는 순간까지 다른 것은 다 잃어버려도 꿈만은 잃지 말라.
 
   심지가 굳은 사람이 되라. 어떤 일이 있어도 비전에서 후퇴하지 말라. 등잔의 심지가 곧으면 빛이 나오지만 심지가 옆으로 누우면 연기가 난다. 꿈을 포기하면 연기만 나는 인생이 된다. 눕지 말고, 처지지 말고, 후퇴하지 말라. 남에게 원칙을 강요하는 원칙주의자는 되지 않되 좋은 일을 끝까지 지키는 원칙주의자는 되라.
 
  < 새벽 승리자가 인생 승리자가 된다 >
 
   본문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소중한 사명과 비전을 버리고 물고기를 잡으러 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능숙한 어부들이 밤새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다. 그것도 기적이다. 사실 하나님의 자녀의 실패는 기적이다. 그처럼 기대가 무너진 상태에서 밤새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으니 얼마나 그 마음이 허탈했겠는가? 그런 허탈함도 필요하다. 그래야 동트는 새벽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본문 4절 말씀을 보라. “날이 새어갈 때에.” 아무 소득 없이 제자들은 새벽을 맞았다. 새벽 시간은 어둠이 물러가고 새날이 시작되는 신비한 시간이다. 무엇보다 신비한 하나님의 은혜가 내려지는 시간은 바로 새벽시간이다. 새벽 시간은 하루 24시간 중에 사람이 가장 깨끗하게 되는 시간이고, 첫 열매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시간이다.
 
   한 사람이 보내는 새벽 시간은 그 사람의 사람됨과 성품과 장래를 잘 보여준다. 새벽 시간을 잘 보내면 하루를 훨씬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큰 인물 중에 충분한 수면을 누린 사람은 없다. 새벽 시간의 승리자는 하루를 승리하고, 그 승리들이 쌓여 인생 전체의 승부에서도 승리한다.
 
   특히 새벽 시간을 잠자는 시간이 아닌 기도 시간으로 만든다면 얼마나 복된 일인가? 새벽에 말씀 묵상 후 간절히 기도하며, 기도를 “하나님! 오늘도 아무 사고 없이 지켜주세요.”라고 마치면 마음이 든든해지고 넉넉해진다. 새벽 시간을 잘 활용하면 영혼의 각종 어둠이 물러간다. 그때 어두운 마음과 생각이 물러가고, 가정과 영혼의 모든 걱정 근심이 물러가고, 그때 주님을 가장 깊은 차원에서 만나게 된다.
 
  < 빈손이 오히려 축복이다 >
 
   본문 4절은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다.”고 적고 있다. 예수님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한 빈손의 제자들을 새벽에 찾아주셨다. 그것이 주님의 속성이다. 사람들은 풍요한 사람은 찾고 부족한 사람은 멀리하지만 예수님은 풍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멀리하고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가까이 하신다.
 
   사람들은 힘을 정의로 생각하고 일이 잘되고, 힘이 있고, 도움이 필요 없을 때는 돕겠다고 찾아온다. 교회도 힘이 있으면 찾아와서 헌신하겠다고 하고, 건축을 돕겠다고 하고, 봉사하겠다고 하고, 전도하겠다고 한다. 반면에 실패하고 힘이 없으면 그 순간부터 발걸음이 끊어진다. 그때가 정작 도움이 필요한 때인데 그때는 외면하는 것이 보통 사람의 모습이다.
 
   세상은 힘을 정의로 보지만 주님은 사랑을 정의로 본다. 주님은 내가 잘 나갈 때는 더 이상 은혜로 함께 하지 않지만 내가 부족한 줄 알면 은혜로 함께 하신다. 사람이 힘이 있을 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 힘이 없을 때에는 따뜻한 사랑을 가지고 급히 찾아오신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순간은 가장 은혜가 주어지는 순간이고,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외면당하는 순간은 하나님께서 가장 내 옆에 있는 순간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신앙이 부족하고 신앙생활이 부끄러우면 주님이 나를 멀리할 것 같지만 그때도 주님은 여전히 내 곁에 계신다. 내가 여러 번 실패해도 주님은 결코 내 사명을 빼앗아가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때 나를 찾아와 주시고, 다시 안아주시고, 다시 사명을 주신다. 그런 의미에서 빈손이 오히려 축복이다.
 
   본문 4절을 자세히 묵상하면 주님은 어디 가셨다가 새벽에 찾아오신 것이 아니라 아마 그 전에도 계속 지켜보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때는 예수님이 계신 줄 몰랐다. 자기 힘으로 열심히 고기를 잡아보려고 할 때는 주님이 보이지 않았지만 고기가 안 잡히고 한참 자기 연민에 빠져 있을 때 주님은 나타나셨다.
 
   혼자 열심히 살려고 몸부림 칠 때는 주님이 잘 보이지 않지만 고기도 안 잡히고 낙심되고 내 힘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을 느낄 때 주님이 보인다. 술 먹고 젓가락 두드릴 때에는 주님은 보이지 않지만 술이 깨서 허탈함을 느낄 때쯤 주님이 보인다.
 
   노름을 열심히 할 때에는 주님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새벽 1-2시까지는 주님 없이도 돈을 따는 것 같지만 새벽 5시쯤 되면 자신이 빈털터리임을 깨닫고 고백하게 된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는 길이 없습니다.” 바로 그때 주님이 보이고, 주님의 음성이 뚜렷하게 들린다. 그런 의미에서 가끔 빈손이 되는 것도 오히려 축복이다.
 
   3공화국 초기에 한 젊은 목사가 있었다. 젊었을 때 그의 취미는 웅변이었다. 전국 웅변대회에서 항상 일등을 했다. 누가 웅변대회 등록을 하려다가 그의 이름이 있으면 등록을 포기할 정도였다. 그는 27살에 목사가 되고, 29살 때 7명이 집에서 교회를 개척했다. 웅변 실력으로 하나님의 말씀도 잘 전해서 교회개척 9년 만에 5천명이 모였다.
 
   재산도 엄청났다. 자신이 쓴 책이 96권이 있었고, 32살에 자신 돈으로 직접 세운 4600명 학생이 있는 고등학교에서 교장과 이사장을 했다. 45살 때는 대통령으로부터 문교부장관 제의까지 받았다. 그처럼 잘 생기고, 말 잘하고, 똑똑했던 그가 50세에 쓰러졌다. 3년 동안 말도 못하고, 몸을 가누지도 못했다.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옛날처럼 말을 잘하고 싶어 울면서 기도했다. “하나님 교인들이 보고 싶어 죽겠습니다. 죽기 전에 딱 한 번만 교회 나가서 설교하고 죽게 해 주세요. 5분 동안만이라도 좋습니다. 그러면 죽을 때 감사하며 웃으면서 죽겠습니다.”
 
   거의 의식이 없고 말도 못하는 상태에서 그는 계속 “딱 한번! 5분만!”하고 기도했다. 3년 만에 거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자기 간증을 섞어 5백 번 이상 부흥회를 인도했다. 부흥회에서 그는 항상 이렇게 강조했다. “제가 교만하게 하나님 앞에 까불다가 혼나서 이렇게 바보가 되었습니다. 교만은 죽는 길입니다. 주님 없으면 안 됩니다.”
 
   빈손도 축복이다. 빈손일 때 절망하지 말라. 하나님은 한쪽 문을 닫을 때는 반드시 다른 쪽 문을 열어준다. 실패와 빈손은 ‘정지 신호’가 아니라 ‘방향 전환 신호’이다. 그때 방향을 주님 중심적으로 잘 바꾸면 오히려 그때부터 훨씬 복된 인생이 펼쳐진다. 실패는 주님을 바라보라는 표지판이다. 실패해도 주님을 바라보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고 성공이다. 반면에 성공해도 자기 의를 드러내면 그것은 실패이다.
 
   간증도 조심해야 된다. 잘못하면 간증이 자기를 높이는 수단으로 전락될 수 있다. 물론 처음 간증은 순수하다. 그러다가 유명해지고, 강사비도 두둑이 생기면서 직장과 일을 그만두고 전문 간증집회 인도자로 나서면 재미있는 말, 환상적인 스토리, 모험적인 무용담이 더해지면서 결국 자기를 높일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한다.
 
   옛날에 극적인 변화 얘기를 가진 한분이 처음에는 간증을 많이 다니다가 나중에는 간증을 다니지 않겠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순수했는데, 간증을 하다 보니까 자꾸 자기 의가 드러나고 조금씩 무용담이 첨가되는 것 같아 간증집회를 사양하게 된 것이다.
 
   내가 잘나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 때문에 사는 것이다. 세상살이가 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 때로는 힘든 때도 있지만 그때 빈손으로 주님을 더욱 붙잡고, 이해가 되지 않아도 그 일을 통해 주어질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와 고통, 낙심과 좌절의 순간을 통해 가장 깊은 차원에서 만나주시고,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신다. 중요한 것은 ‘실패의 이해’보다 ‘실패 중에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내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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