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6장 37절
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비판과 정죄를 삼가라 (누가복음 6장 37절)
< 비판하지 말라 >
예수님이 “비판하지 말라.”라고 한 말씀은 비판 자체를 전면 부정한 말씀이 아니라 “비판을 주의하라.”라는 말씀이다. 정당한 비판은 필요하다. 때로는 옳게 판단하고 용기 있게 비판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비판만 하거나 잘 알지 못하면서 섣부르게 비판하는 것은 조심하라. 사실상 비판을 잘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비판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다. 비판을 받으면 기분이 나쁘지만 비판을 잘 받아들이면 개선의 기회를 얻는다.
다윗은 비판을 잘 받아들일 줄 알았기에 나단 선지자가 우리아의 아내를 간음한 것을 지적하자 진심으로 회개했다. 반면에 헤롯은 세례 요한이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간음한 것을 지적하자 오히려 세례 요한을 잡아 죽였다. 비판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면 개선의 기회를 잃는다. 비판을 잘 받아들이는 심력을 키우고 듣기 싫은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라.
비판할 때 비판을 잘 하는 기술과 재치도 필요하다. 잘못 비판하면 인간관계에 큰 상처가 생기기 때문이다. 비판이 비난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바른 비판은 문제를 해결하지만 비난은 문제를 악화시킨다. 가끔 보면 “나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을 해.”라고 하는 사람은 비교적 용기 있고 정확하고 빈틈이 없고 깨끗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 때문에 문제는 더 꼬이고 교회는 더 어려워질 때가 많다. 그래도 그는 자기 잘못을 인식하지 못한다. 내가 바르게 비판했는데 무슨 잘못이냐는 태도다.
비판은 바르게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혜롭게 잘 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무리 바른 비판도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해 버리면 비판의 효과는 사라진다. 비판하는 사람은 비판을 잘 전달할 책임이 있다. 머리를 열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슴을 열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감정이 뒤틀리면 이성도 뒤틀리기 때문이다. 비판할 때 그것이 정당한 비판인지 아니면 감정을 건드리는 비난인지 잘 분별하라. 비판과 비난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국 사랑이다. 사랑도 없이 상대방의 약점만 찾아 비판하는 비판 중독자가 되지 말라.
< 정죄하지 말라 >
예수님이 “정죄하지 말라.”라고 한 말씀은 법정에서 정죄하는 것까지 금하라는 말씀은 아니다. 마치 자신이 궁극적인 재판관처럼 사람을 죄인처럼 심판하는 자세를 삼가라는 말씀이다. 선악의 분별은 필요하지만 선악의 심판을 내리는 태도는 극히 삼가라. 선악의 심판을 내리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다.
비판이 습관화되면 점차 교만해져서 마치 내가 죄인을 심판하는 것처럼 남을 정죄하는 잘못까지 저지를 수 있다. 비판은 잘못을 바로 잡도록 돕는 것이지 정죄하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인 정죄는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 남을 정죄하는 것은 “나는 죄가 없다.”라는 것을 드러내려는 말이다. 왜 사람들이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려고 했는가? “나는 간음하지 않았다”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려는 본능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죄가 없다는 것은 무서운 착각이다.
내가 죄가 없다는 착각에 사로잡히면 구세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구세주에게 감사한 마음도 없게 된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결국 비판보다 무서운 것은 비판이 발전된 정죄다. 비판이 습관화되지 않도록 지극히 주의하라. 더 나아가 “비판하지 말고 정죄하지 말라.”라는 말씀의 더 깊은 의미가 있다. 그것은 “격려하라.”라는 말씀이다. 비판도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지만 비판보다 더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격려다.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것이 비판의 목적이라면 가장 좋은 비판은 역설적으로 바로 격려다.
비판의 목적은 문제를 고치는 것이다. 예수님도 삭개오의 부족한 점과 문제를 잘 아셨지만 그 문제를 조목조목 따지고 회개하라고 다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멸시하는 그의 집에서 하루를 머무시겠다고 했다. 그 사랑과 격려가 내포된 말씀에 삭개오는 마음이 녹아내렸다. 얼마나 좋은 역설적인 비판인가? 가장 좋은 비판은 약점을 꼼꼼하게 잘 잡아내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넉넉하게 사랑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비판과 정죄보다 사랑과 격려와 용서를 앞세우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