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8장 1절
1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끝까지 함께하라 (누가복음 8장 1절)
< 끝까지 함께하는 사람 >
영화 <벤허>에서 주인공 벤허가 억울하게 노예가 되어 노예선을 타고 가다가 노예선을 중심으로 해전이 일어나 사령관이 탄 배가 파선했다. 그때 벤허는 사령관을 구출해 뗏목에 올라탔다. 사령관은 전쟁에 진 줄 알고 자결하려고 했지만 벤허가 자결을 못하게 붙들었다. 나중에 보니까 전쟁에 이긴 상태였다. 결국 둘 다 구출 받고 사령관은 전쟁 영웅이 되었고 벤허는 그의 양자가 되었다.
연약해진 주인을 붙잡아 준 것 한 가지를 잘했기에 노예가 순식간에 귀족이 된 것이다. 그처럼 제자는 리더가 어려움에 처할 때 붙잡아 주어야 한다. 그때 하나님은 그 제자를 붙잡아 주고 축복의 길을 열어 주신다. 디모데는 영적인 리더였던 사도 바울이 힘들 때 바울에게 힘을 주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신뢰했고 하나님은 디모데의 길을 열어 주셔서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교회인 에베소 교회의 담임이 되었다.
리더에게는 디모데와 같은 참 제자가 필요하다. 누군가 어려움에 처할 때 그를 붙잡아 주는 사람에게 축복의 길이 열린다. 축복과 성공은 이웃을 격려하는 사람의 것이다. 제자는 배우면서 리더를 격려도 해야 한다. 자녀는 부모로부터 무조건 얻기만 하지 말고 드릴 줄도 알아야 한다. 그처럼 끝까지 몸과 마음으로 함께하며 섬길 줄 아는 사람이 참된 제자이자 친구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하실 때 제자들이 함께했다. 하나님의 일은 함께 이루어 가야 한다. 신앙이란 함께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혼자 하나님을 잘 섬기겠다고 하지만 쉽지 않다. 홀로 된 불꽃은 아무리 위대한 불꽃도 곧 꺼진다. 주님과 좋을 때도 함께하고 힘들 때도 함께하는 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이 먼저 나를 떠나지 않기에 내가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고통 중에도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으면 축복의 문이 열린다.
< 끝까지 함께하라 >
어느 날 영국 트리니티 대학에 조셉이란 학생이 한 여인과 사랑에 빠져 들뜬 마음으로 결혼을 준비했다. 그런데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약혼녀가 익사했다. 그날부터 그는 완전히 말을 잃어버렸다. 몇 달 동안 넋을 잃고 지내는 그에게 어머니가 말했다. “조셉! 친구 좀 사귀어라.” 조셉이 말했다. “어머니! 저는 앞으로 다시는 여자 친구를 사귀지 않을 겁니다.” 그때 어머니가 말했다. “여자 친구는 없어도 괜찮아. 그러나 예수님이 너의 영원하신 친구임은 잊지 마라.”
그 어머니의 말을 듣는데 갑자기 마음에 천국 소망이 생기고 기도하고 싶었다. 그래서 몇 달 만에 처음 책상에 앉아 마음을 쏟아붓는 간절한 기도를 했다. 기도하면서 이상한 감동에 사로잡혀서 붓을 들어 시를 적었다. 그것이 찬송가 487장이다.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예수님의 친구 되심을 믿고 끝까지 예수님과 함께하라. 제자들과 가룟 유다의 결정적인 차이는 한 가지다. 그것은 끝까지 예수님과 함께했느냐의 차이다. 인간적으로는 가룟 유다가 훨씬 똑똑했지만 끝까지 함께하는 태도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뜻대로 주님이 움직여 주기를 원했지만 주님이 그렇게 움직여 주지 않자 주님을 배반했다. 그래서 똑똑한 사람들이 빠르게 가려다가 멸망과 불행으로 간다.
공동체에서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함께했던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는 것이다. 특히 좋은 때보다 어려운 때 얼마나 함께한 시간이 많으냐가 중요하다. 오랫동안 고난의 세월을 앞서 맞았던 사람을 존중하라. 그들이 능력이 부족하고 컴퓨터를 모르고 기도를 화려하게 하지 못한다고 해서 “저리 비키세요.”라고 하지 말라. 사람의 믿음과 성품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끝까지 함께하는 자세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