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3장 1-10절
2. 안위와 쾌락
2. 안위와 쾌락
무명의 젊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명을 이행하려고 남유다에서 국경을 넘어 북이스라엘의 벧엘까지 왔다. 나라가 남북으로 갈린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국경을 넘으면 목숨이 위험했지만 그는 죽기를 각오했다. 그처럼 성도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안위와 쾌락을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 안위와 쾌락을 추구하면 점차 그것에 젖다가 결국 망한다.
에스키모는 늑대를 잡을 때 칼끝에 피를 묻혀 놓는다. 그러면 늑대는 칼에 자신의 혀가 베이는 줄도 모르고 계속 맛있게 핥다가 결국 죽는다. 그처럼 안위와 쾌락에 미혹당하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한다. “이번 한 번만 그 일을 하자. 아무도 모를 거야.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동성애, 마약, 이단, 나쁜 게임 등에 점차 빠져드는 이유는 처음에 한 번 가벼운 마음으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죽는 길인 줄 모르고 처음에 가볍게 들어섰다가 중독되면 결국 그 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무엇이든지 유혹적인 것은 처음에는 잠깐 쾌락이 있지만 곧 쾌락은 사라지고 나중에는 기쁨을 다 빼앗긴다. 훈련의 고통은 잠깐으로 끝나지만 쾌락의 고통은 오래간다. 어떤 사람은 훈련과 절제가 힘들고 스트레스가 된다고 하지만 더 힘들고 더 스트레스가 되는 것은 쾌락에 속박되는 것이다. 쾌락적인 자기 욕망의 선은 한 번이라도 넘지 말고 패배적인 자기 한계의 선은 과감히 뛰어넘으라.
어떤 한계 안에서 편한 것보다 불편이 예상되어도 그 한계를 뛰어넘으라.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나를 믿으면 내가 하는 일을 하고 그보다 큰 일도 할 수 있다(요 14:12).” 자신의 한계를 정해 놓고 “이 정도면 됐지.”라고 하지 말라. 내 앞에는 하나님이 나를 위해 계획하신 더욱 찬란하고 복된 세계가 펼쳐져 있다. 지금보다 더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헌신해서 교회의 기둥과 터처럼 쓰임 받는 소원을 가지라.
어려워도 사명과 교회 사랑을 포기하지 말고 지금보다 더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로 나아가고 더 예수님 닮은 모습이 나타나게 하라.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다. 엄청난 특권이다. 왜 자녀를 생각하면 기쁜가? 나를 닮은 생명의 신비를 느끼기 때문이다. 하나님도 내가 예수님을 닮아 가면 가장 기뻐하신다. 이 땅에서 편히 살기보다 열심히 사명을 따라 살면서 예수님의 향기를 나타내라.
물론 열심히 일한 후에 편안한 쉼을 누리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쉼을 사명 이행을 위한 재충전과 재창조의 기회로 삼아야지 계속 편안한 쉼만 추구하면 안 된다. 특별한 사명을 이행하도록 하나님은 모든 성도를 구원하시고 은사와 재능과 물질과 시간을 주셨다. 그 주어진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쓰라. 거룩한 삶의 목적을 외면하고 외적인 것으로 나를 채우려고 하면 내면이 공허해지지만 거룩한 삶의 목적을 위해 내 것을 버리면 내면에 풍성한 은혜가 넘치게 될 것이다. <23.10.31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