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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0-11절의 사자는 악인의 상징으로서 결국 악인은 힘을 잃고 패망한다. 그 말도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이지만 사실상 그때 욥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말씀을 지혜롭게 잘 전해야 누군가에게 말씀으로 받아들여진다. 타인 감수성이 결여된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남의 고난을 자신의 잣대로 쉽게 재단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남의 고난을 죄의 결과로 쉽게 해석하는 태도는 매우 위험한 태도다. 그런 태도가 있으면 인간관계가 쉽게 깨지고 자신도 영적인 교만으로 인해 망한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엘리바스와 같은 사람이 찾아와 “당신의 죄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습니다.”라는 식으로 점잖으면서도 무책임한 질책을 할 때가 있다. 그때 너무 분노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그 말을 들으면서 “다음부터 나는 남에게 저렇게 말하거나 행동하지 말자.”라고 다짐하라. 그런 다짐을 하게 된 것만으로도 내게 주어진 고난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한 셈이다.
누군가가 고통을 당하면 사람들은 궁금증을 가진다. ‘왜 그가 저렇게 되었지?’ 궁금증이 지나치면 잘못된 해석을 하고 잘못된 말을 해서 고통당하는 사람의 상처를 오히려 가중시키는 경우도 있다. 보통 사람이 작은 고통을 당하면 의문을 품지 않고 쉽게 위로할 수 있다. “그럴 수 있죠. 얼마 후에는 나아질 겁니다.” 그러나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 큰 재난을 겪는 것을 보면 의문을 가진다. ‘왜 그럴까?’
욥의 세 친구들은 욥에게 그런 의문을 가졌다. 악인이 그런 일을 당하면 놀라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데 의인이라고 여긴 사람이 끔찍한 고난을 당하면 의구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의구심이 있었기에 욥과 세 친구들의 변론이 4장에서 26장까지 길게 계속된 것이다. 그때 친구들은 욥이 어떤 죄를 지어서 그런 시련을 당했을 것이란 투의 말을 수없이 하면서 욥을 은근히 정죄했다. 그런 모습이 내게도 있을 수 있기에 고난당하는 자 앞에서는 말과 말씀을 더욱 지혜롭게 전하려고 힘쓰라.
가끔 보면 보편적인 원리와 일반적인 진리로 고난 중에 있는 사람을 정죄하는 타인 감수성이 결여된 사람이 있다. “오직 예수!”라고 수시로 말하면서 잘못된 말을 무책임하게 하지 말라. 남의 문제와 고통을 가지고 정확하게 그 원인을 알지도 못하면서 단호하게 해석하고 충고하는 모습은 결코 복된 모습이 아니다. 냉정하게 찌르는 말보다 따뜻하게 감싸는 말이 더욱 영혼을 살린다. 바른말을 정확하게 하는 것만 좋아하지 말고 바른 말을 지혜롭게 하는 거룩한 대화술에 능한 성도가 되라. <26.7.8 월간새벽기도 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