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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명령대로 무리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방을 떠나고 다단과 아비람은 그들의 처자와 유아들과 함께 나와서 자기 장막 문에 섰다(27절). 이 구절을 보면 고라의 가족은 고라의 반역에 동조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모세가 말했다.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일을 행하게 하신 것이요 나의 임의로 함이 아닌 줄을 이 일로 말미암아 알리라(28절).” 그는 곧 있을 심판이 자신이 임의로 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모세가 계속 말했다. “곧 이 사람들의 죽음이 모든 사람과 같고 그들이 당하는 벌이 모든 사람이 당하는 벌과 같으면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심이 아니거니와/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이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유물을 삼켜 산 채로 스올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29-30절).” 고라 일당이 당하는 일이 일반적이 아닌 기적적인 일로서 땅이 입을 열어 그들을 삼켜 산 채로 스올에 빠지게 하면 하나님을 멸시한 것 때문인 줄 알라고 했다.
스올은 구약 시대에 죽은 사람이 가는 지하 세계를 뜻하는데 무덤이란 뜻으로도 사용되었다. 모세는 고라 일당이 어떻게 죽게 될지 미리 알고 있었다. 그때 모세는 왜 그들의 죽음과 관련된 경고를 했는가? 고라 일당이 당한 심판이 하나님에 의한 심판임을 명확히 해서 추가로 시험 드는 백성이 없도록 하고 동시에 더이상 다른 백성이 하나님의 거룩성과 심판을 가볍게 여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공동체 생활에서 유독 시험에 잘 드는 사람이 있다. 쉽게 잘 흔들리는 연약한 개인의 성품 때문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에는 사랑과 정의를 오해하기 때문이다. 당시 하나님이 고라 일당에게서 떠나라고 하셨을 때 백성 중에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왜 사랑의 하나님이 고라 무리를 품지 않고 그들에게서 떠나라고 하실까? 왜 그들을 멸하려고 하실까?” 그런 의문은 사랑과 정의를 오해한 것이다.
때로는 사랑하면서도 교육적인 목적으로 누군가를 멀리할 수 있다. 그때 감정적인 미움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멀리한다면 그것도 사랑이다. 죄인이 죄로부터 분리되도록 전략적으로 죄인을 멀리하고 필요하면 심판도 내리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죄나 죄인을 무조건 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 없는 정의는 남용된 정의이고 정의가 없는 사랑은 남용된 사랑이다. 남용된 사랑은 영혼을 망치지만 참된 사랑은 영혼을 살린다.
사랑의 개념을 오해하지 말라. 공동체 생활에서 스타일과 가치관이 많이 달라서 어울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 사랑이 없다고 여기지 말라. 밉고 싫은 감정을 가지지 않는 상태에서 단순히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사람은 다 차이가 있다. 차이가 있는 것을 차이가 없도록 강제하는 태도를 버리라. 남을 내 기준으로 틀렸다고 여기며 고치겠다고 나서는 것을 사랑으로 오해하지 않아야 시험 드는 일이 줄어든다. - <월간새벽기도> 22년 6월호 중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