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의 길이 황제의 길
서기 395년, 로마 제국은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열되었다. 그 후 서로마는 동방의 훈족에 쫓겨 대이동을 한 게르만 민족의 침입으로 유린되다가 476년 게르만인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멸망당했다. 서로마 멸망 후, 서게르만 계통 프랑크족 출신 클로비스 1세가 486년 서유럽 최초의 게르만 통일 국가인 프랑크 왕국을 세웠다.
프랑크 왕국은 루트비히 1세(Ludwig I) 사후, 세 아들의 상쟁으로 843년, 동프랑크(독일), 중프랑크(이탈리아), 서프랑크(프랑스)로 분열되었다. 그 중에 동프랑크의 오토 대제는 이슬람과 이방 민족으로부터 로마 교회를 보호한 공로로 962년 로마 교황으로부터 신성 로마 제국(The Holy Roman Empire)의 황제로 대관되었다. 그때부터 유럽의 영적 지도자는 교황이었고 정치적 지도자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였다.
명목상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는 유럽 전체의 대통령이었지만 황제가 교황청과의 정치적 문제에 몰두하느라 독일 내의 지배력은 급속히 약화되고 제후들의 세력이 강화되었다. 1300년경에는 300여 명의 제후들이 난립해있었는데 당시 황제는 세습되지 않고 7명의 선제후(Kurfürst)들의 선거로 제후들 중에서 뽑혔다.
그 즈음, 독일 바이에른(Bayern) 지방에 방탕하고 포악한 한 공작(Duke)이 살았다. 어느 날, 그가 사냥을 나갔다가 숲 속에서 한 작은 교회를 발견했다. 교회에 들어서 잠깐 기도하고 고개를 드는데 교회 벽에 어떤 문장이 잠깐 보였다가 사라졌다. 그 문장은 “In three...”로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의 방탕을 알았기에 그 문장을 “3일 지나면 하나님의 심판대에 설 것이다.”란 문장으로 여겼다.
숲에서 돌아와 그는 죽음을 대비해 천사처럼 살다 3일 후 높은 탑 위로 올라가 죽음을 기다렸다. 그날 아무 일도 없었다. 그는 “그 문장은 3일이 아니고 3달이었구나!”라고 생각하고 3달 동안 자신을 절제하며 살았다. 그 동안 가정의 상처는 치유되었고 백성들은 공작의 회개를 진심으로 기뻐했다. 정확히 3달이 되던 밤, 그는 높은 탑에 다시 올랐지만 그날도 하나님의 심판의 나팔은 없었다.
그는 그 문장이 ‘3년’이라 믿고 절제하며 살다 3년 후 또 탑 위로 올라갔다. 마침내 나팔소리가 들렸다. 그 나팔은 선정을 베푸는 그를 선제후들이 황제로 뽑은 후 모시러 온 사절단의 나팔이었다. 그가 1314년 프랑크푸르트의 다섯 제후들에 의해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 추대된 또 다른 루트비히(Ludwig)다.
현대인들은 너무 바빠 하늘 한번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어쩌다 여행 가서 한번 하늘을 보면 깜짝 놀란다. 저렇게 별이 많은지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인생이 추구할 것은 ‘땅과 오늘’이 아니라 ‘땀과 하늘’이다. 올 때의 순서와 갈 때의 순서는 다르다. 죽음을 대비하는 것은 삶을 대비하는 것이다. 곧 돌아갈 하늘고향을 생각하며 내딛는 절제의 길이 황제의 길이다. 이한규의 <상처는 인생의 보물지도> 지혜편 중에서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