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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을 향한 요셉의 용서는 깊은 감동을 준다. 사람이 분노할 권리가 있다면 요셉이 제일로 분노해야 하지만 그는 형제들을 끝까지 용서했다. 그런 용서가 있었기에 하나님이 그와 늘 함께하셨고 고난 중에도 평안과 지혜가 넘쳤다. 용서의 능력을 갖추라. 어떤 사람은 ‘능력’이라고 하면 재력이나 학력이나 신비한 초자연적인 능력을 떠올리지만 최고의 능력은 겉으로는 화려하지 않게 보여도 십자가의 용서의 능력이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을 겪은 사람이 용서하는 문제로 씨름하다가 하나님 앞에 그 문제를 가지고 나아가 눈물로 하소연하면 하나님이 용서하는 마음을 주시면서 영적으로 그를 꼭 품에 안아 주실 것이다. 그때 영혼에 홀가분한 느낌도 생기고 하나님의 최상의 조치도 소리 없이 진행될 것이다. 큰 은혜와 축복과 능력을 원하면 큰 용서를 실천하라. 제일 자유로운 사람은 용서하는 사람이고 제일 속박된 사람은 용서가 없는 사람이다. 인간이 가진 제일 좋은 자유는 용서를 통해 모든 얽매임에서 벗어나 새롭게 되는 자유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이런 말씀에 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과거의 상처를 다 잊고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셨듯 미운 사람을 용서하라. 습관 중 제일 위대한 습관 중 하나는 용서가 인격화된 습관이다. 용서의 신학적 의미는 ‘그냥 가도록 놓아주는 것’이다. 기막힌 일을 당했어도 하나님의 새 역사를 믿고 그 일을 저지른 사람을 그냥 가도록 놓아주라.
스스로 원수를 갚으려고 하면 원수보다 더 못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용서는 감정을 넘어 선택하는 행위다. 용서에는 인간적인 감정의 자리가 없어야 한다. 내 감정과 앞날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라. 하나님은 복수할 권한과 능력도 주시지 않았고 복수할 수 있는 온전한 판단력도 주시지 않았다. 내게 해를 끼친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용서하는 일이다. 성경은 해를 끼친 사람을 용서해 준 사람이 복 받는 얘기로 가득찬 ‘용서행전’이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사람을 보라. 믿음생활이 쉽지 않은 이유는 ‘복수의 작업’이 아닌 ‘용서의 작업’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눈은 눈으로 갚고 이는 이로 갚는 한풀이의 종교가 아니라 사랑과 용서로 문제를 푸는 종교다. 고난 중에도 찬란한 꿈을 잃지 말고 성도의 거룩한 자존심을 지키고 용서로 힘든 문제를 극복해서 요셉처럼 복되게 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