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에 대한 4가지 반응
한 할머니가 죽으면서 딸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잊지 말아라! 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훨씬 많단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세상에는 좋은 사람보다 나쁜 사람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왜 나쁜 사람이 많은 것처럼 보입니까?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선은 감추어져 있는 경우가 많고 악은 드러나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둘째, 열 가지를 잘해도 한 가지를 잘못하면 그 한 가지를 너무 크게 보기 때문입니다. 셋째, 때때로 선한 사람 백 명이 악한 사람 한 명을 당하지 못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기 때문입니다. 선은 왜 이리 무기력합니까? 그러나 한 가지만은 철저히 믿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선의 최종 승리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악이 존재합니다. 그처럼 악한 일이 생길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사람들은 보통 악에 대해 4가지 형태로 반응합니다.
첫째 ‘도피형 반응’이 있습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듯이 악을 보고 아예 외면하는 태도가 바로 이러한 ‘도피형 반응’입니다.
둘째는 ‘절망형 반응’이 있습니다. 악한 현실을 타개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이 여기며 절망해 버리는 태도를 말합니다.
셋째는 ‘종속형 반응’이 있습니다. 이것은 가장 위험한 반응 형태로서 악한 일을 당하면 똑같이 악으로 보복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눈에는 눈으로 갚고 이에는 이로 갚는 태도는 재판 법률은 될 수 있어도 도덕률은 될 수 없습니다. “저 사람 버릇을 반드시 고쳐 놓아야지.”라고 하다가 자기가 더 나빠지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넷째 ‘참여 극복형 반응’이 있습니다. 이것은 가장 바람직한 반응 형태로서 악한 현실을 보면 그 현실 속에 뛰어 들어가 선을 이루려는 태도를 말합니다. 성도는 이런 4번째 반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가 속한 사회는 소망이 있게 됩니다. ‘이사야’가 바로 그런 참여 극복형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청년 애국자였던 이사야는 유다와 예루살렘 성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읍과 나라가 멸망과 재앙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현실에 참여하게 됩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