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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경 복음서들은 예수님이 공생애 전에 행하신 여러 기적을 언급하며 예수님의 신성을 높이려고 했지만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정상적인 성장 과정을 거치셨음을 언급한다(52절). 그런 언급은 예수님의 신성을 약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예수님이 철저히 인간이 되셨음을 나타내며 성육신의 사랑에 더욱 감동하게 만든다. 정상(情狀)적인 길이 어떤 때는 정상(頂上)으로 가는 최적의 길이다.
어떤 사람은 ‘정상적인 것’보다는 ‘환상적인 것’만 좋아해서 환상적인 얘기가 있어야 신성이 증대된다고 여긴다. 그런 환상적인 방식을 동원했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몇 가지 기적만 펼쳐도 전 세계 모든 인류를 단기간에 예수님을 믿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환상적인 기적을 동원하면 보지 못하고도 믿는 믿음의 원리가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다.
하나님은 마술적인 신앙을 결코 기뻐하시지 않는다. 마술사들의 눈속임은 대단하다. 눈 깜짝할 새에 옷을 다 갈아입는 마술도 신기하지만 그보다 훨씬 신기한 마술도 많다. 보통 사람은 아무리 봐도 그 비밀을 잘 알아채기 힘들다. 마술로도 보통 사람들을 속이기 쉽기에 마술 신앙에 빠지면 영혼이 교주의 노리개가 될 수 있다. 신기한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신기한 것으로 신앙 기초를 세우지 말라.
예수님은 인간 가정에서 태어나 인간이 겪는 모든 과정을 겪으셨다. 그 과정을 보여 주려고 예수님의 어린 시절 얘기가 잠깐 성경에 기록된 것이다. 결국 예수님의 탄생 후에 공생애를 시작할 30세까지 예수님이 행한 초자연적인 기록을 성경이 배제한 것은 기적 중심적인 신앙을 주의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기적을 좋아하면 과정도 없이 열매만 찾는 무책임한 사람이 되기 쉽다. 지나친 기적 추구는 참된 영성의 길이 아니다. 인간은 신적인 것을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적인 것을 좋아하신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펼쳐진 인간적인 과정도 마땅히 필요한 과정임을 예수님의 인간적인 성장 과정이 잘 교훈한다. 과정을 슬쩍 생략하고 좋은 결과만 얻으려고 하지 말라.과정에 충실해야 좋은 결과도 얻는다.
어느 날 한 어리석은 농부가 몇 년 동안 노새에게 먹인 귀리가 아까운 생각이 들어 귀리에 약간의 톱밥을 섞었다. 다음날에는 조금 더 섞었고 그 다음날에는 조금 더 섞었다. 노새는 귀리의 양이 준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농부는 모든 것이 자기 의도대로 잘 되는 줄 알고 계속 귀리의 비율을 줄여서 비용을 꽤 절약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새가 거의 톱밥으로만 된 여물을 먹은 후 벌러덩 엎드러져 죽어 버려서 결국 몇 배의 손해를 입었다.
자신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예수님과의 관계가 조금씩 멀어지는 것을 경계하라. 예수님을 마음의 중심에서 조금씩 외곽으로 밀어내면 나중에는 영혼의 붕괴 순간을 맞이한다.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순수한 마음을 잃고 형식과 체계의 수레바퀴에 끼여 살기 쉽다. 형식과 체계에 사로잡히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다가 나중에는 어둠의 본성에 사로잡혀서 십자가가 없는 십자군처럼 되기 쉽다.
중세 시대에 십자가가 없는 십자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내면에 있는 미움과 공포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들은 남을 부수는 것은 잘했지만 나를 부수는 것은 잘하지 못했다. 결국 점차 자신의 인격이 무너졌고 심지어 자신의 믿음까지 무너졌다. 중세의 십자군의 모습은 힘을 추구하는 현대의 외형주의자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남을 멸시하고 파괴하는 것은 나를 멸시하고 파괴하는 것이다. 남을 무너뜨리며 희열을 맛보는 인간의 본성을 멀리하려면 힘써 예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살라. <월새기 21.1월호 중에서 발췌>